2016년 2월 11일 목요일

실리콘밸리의 그늘 - 소득 불평등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구글 직원들은 평소처럼 출근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주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원이 아닌 몇 사람들이 버스를 에워쌌다. 시위대였다. 공공 시설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었다. 버스는 한참을 붙들려 있다 풀려났다. 이 날 시위는 미전역에 화제가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번의 시위가 이어졌다.

몇 일후 근처 오클랜드시에서는 구글 직원들을 태운 버스에 벽돌이 날아들었다. 창문이 깨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구글 뿐만 아니라 애플 등 기술기업의 직원을 출퇴근 시키는 버스들이 연쇄적으로 봉변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의 집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감시, 통제, 자동화로 부도덕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구글 버스 시위대의 구호는 이렇다. 구글 등의 사기업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공공 버스 정류소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셔틀버스가 잠깐씩 버스 정류소에서 사람들을 태우는 것이 돌을 던지며 시위까지 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버스정류소 시위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의 수면아래에 소득 불균형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글 등의 기술 기업들이 정류소 이용료를 샌프란시스코시에 납부하는 것으로 버스 정류소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지는 곳

미국을 이끌어 가는 도시 4개를 뽑으라고 하면 금융의 뉴욕, 정치의 워싱턴, 문화의 LA, 그리고 기술의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다[1]. 실리콘밸리는 행정구역상의 도시는 아니지만, 개념상 큰 도시로 간주하자. 실리콘밸리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는 특별한 곳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종교도 관계없이 오직 아이디어와 실력만으로 회사를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

꼭 회사를 창업해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내에서 엔지니어에게 가장 많은 몸값을 제시한다. 아마도 전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선수 몸값이 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률은 어떤가.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인 산호세의 실업률은 5%대로 미국 최저 수준이다. 참고로, 미국 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는 실업률 5%를 “완전고용”이라고 본다. 실업률, 평균소득[2] 등으로 보면 실리콘밸리는 희망의 땅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비싼 주거비, 물가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일까? 월세다.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집주인이 아니면 월세 세입자다. 음식과 함께 집은 생존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집세로 얼마나 지출하고 있을까. 부동산 업체 리얼팩츠RealFacts에 따르면 산타클라라 카운티(실리콘밸리의 핵심 지역)의 2014년 평균 월세는 우리돈으로 2백3십만원 정도란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매월 2백만원 이상이 집세로 나가니까.  1년이면 2천 7백만원이 넘는 액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세가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평균 월세는 전년에 비해 9%가 늘었다.

집 값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지역은 교통비, 의료비, 식료품비, 공과금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비가 높다.

소득 하위 계층의 증가 

실리콘밸리에 흘러오는 막대한 부는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듯 하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이 실리콘밸리에서 힘을 잃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인구가 62%에서 55%로 줄었다. 그리고 시간당 16불(17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무려 31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8시간씩 일주일에 5일을 꼬박일해도 한 달에 2600불(280만원)을 못 번다는 얘기다. 월세만 내기도 빠듯한 액수다.

시간당 10불(최저임금은 9불이다)을 받는 계약직 노동자는 초과근무를 해도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맥도날드 점원 뿐만 아니라 부자 기업을 위해 일하는 셔틀 운전사, 경비원, 요리사들도 계약직 노동자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정할수도 없고 일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일정이 짜이기 때문에 받는 임금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 일부 노동자들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다쳐도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놔둔채 회사의 일방적인 스케쥴에 맞춰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가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소득 불균형Income Inequality이라고 부르는 데 소득 불균형은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다. 소득 불균형은 미국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미국 의회 예산처 보고서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30년간 상위 1%의 소득은 275% 증가한 반면 하위 20%는 18%밖에 늘지 않았다고 한다.

짙어지는 그늘 

실리콘밸리는 소득불균형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에서 뽑혀온 기술 엘리트들은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임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무료 점심, 고급 의료 보험, 무료 셔틀, 유급 병가, 충분한 출산 휴가 등 더 많은 것을 누린다. 거대 기술 기업의 직원들은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리고 더 넓은 선택권과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글의 주요 의제인 주택문제로 돌아가보자. 전세계에서 모여든 고소득 계층이 목돈이 생기면 하는 일이 주택 구입이다. 주택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주택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보니 주택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도 증가했다. 집을 사려고 돌아다녀보면 막대한 현금을 들고 오는 중국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호가listing price보다 20%정도 웃돈을 주고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이전부터 살던 토박이들은 갈수록 집을 산다는 건 꿈꾸지 못하고 월세로 만족해야 하는데 월세마저 자고 일어나면 천장을 뚫고 있으니 절망스럽지 않을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술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난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로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대의에 나를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첨단 기술과 담이 없어진 세계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하고 중산층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도 난 여전히 기술과 열린 세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고 싶은데 가슴 한 구석에선 죄책감이 자라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22번 호텔[3] 

자정이 지난 금요일 새벽 어느 버스 정류장, 산호세에서 출발하여 팔로알토로 향하는 22번 버스에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모두들 노숙자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운행하는 22번 버스를 사람들은 22번 호텔Hotel 22라고 부른다. 집 없는 이들이 2달러를 내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이다. 

버스 뒤편의 구석진 곳에 아빠와 딸이 자리를 잡고 있다. 딸은 긴 좌석에 가방을 배게삼아 잠을 자고 아빠는 그 뒷좌석에서 앉은채로 잠을 청하고 있다. 아빠는 실직 상태고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들어가고 싶지만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있다. 아빠와 딸은 밤새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5학년짜리 딸은 아침이 되면 스쿨버스로 갈아타고 학교에 갈 것이다.

아빠와 딸은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어떤 꿈을 꿀까.

[1] 매트 커츠의 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네 개는 어디일까요?" 참고. https://www.mattcutts.com/blog/four-city-theory/
[2] 본문에서 소개한 실업률, 평균소득 등의 통계 자료는 각각 다른 보고서를 참고로 했다. 또한, 경우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등의 개별 도시별 통계를 인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각 통계치가 다른 기준과 조건을 갖고 있음을 미리 얘기해 둔다. 다만, 인용한 통계자료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글의 논지와도 맞다고 생각한다.
[3] 22번 호텔에 대한 산호세 머큐리 신문의 기사. http://www.mercurynews.com/bay-area-news/ci_24429126/homeless-turn-overnight-bus-route-into-hotel-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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