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9일 일요일

구글의 핵심 문화 - 피어 리뷰

구글+에 올렸던 글을 모아서 재포스팅합니다. 저에게 구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를 하나만 뽑으라면 피어 리뷰를 고르겠습니다. 왜 그런지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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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Review는 동료 평가로 번역이 되지만, 동료 평가보다는 ‘피어 리뷰’로 쓰는편이 저의 느낌상 더 나아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피어 리뷰로 쓰니 이해해 주세요.

구글이 성공하는 데 피어 리뷰 문화가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어 리뷰 문화가 구글의 핵심인 채용, 성과 평가 그리고 코딩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피어 리뷰는 학계에서는 일반적인 프로세스

피어 리뷰는 학계 특히 과학/공학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프로세스입니다. 논문을 컨퍼런스나 저널에 싣기전에 해당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이 논문을 리뷰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보완하여 논문을 최종 출판합니다. 피어 리뷰는 해당 분야의 수준과 신뢰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프로세스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eer_review

코드 리뷰

코드를 작성하고 코드 베이스(소스 코드를 저장하는 저장소)에 체크인하기 전에 반드시 동료로부터 코드 리뷰를 받아야 합니다. 팀 분위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코드 리뷰를 매우 철저하게 합니다. 시스템의 전체적인 구조에서부터 성능 향상을 위한 조언, 적절한 라이브러리의 사용, 유닛 테스트 그리고 공백의 개수와 주석의 오타까지 모두 리뷰를 합니다. 리뷰어는 한번에 많게는 수십여개에 이르는 개선 사항을 알려주고 리뷰를 받는 사람은 리뷰어가 보낸 의견에 대해 개선을 하거나 자기 의견을 달아 다시 리뷰어에게 보내는 식으로 몇 번을 주고 받은 후에야 비로소 체크인이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코드 리뷰과정은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신뢰할 수 있는 코드를 작성할 수 있고, 리뷰를 받는 쪽이나 리뷰를 하는 쪽이나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으며, 코드의 작성자가 사정상 부재중일 때에도 그 코드를 리뷰했던 동료들이 무리없이 코드를 유지보수할 수 있게 됩니다.

회사 전체를 놓고 보면 코드 리뷰를 통해 코딩 스타일과 문화가 전체 구성원에게 전파됩니다. 구글의 소스코드는 중앙집중화된 코드베이스에 모두 저장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 또는 다른 팀에서 작성한 코드도 모두 같은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같은 코딩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글에는 유닛 테스트, continuous build system, coding style checker, dependency monitor 등 다 헤아리기 힘든 소스코드 관리 기술과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동화된 시스템위에 피어 리뷰를 기반으로는 하는 코드 리뷰 프로세스가 있었기 때문에 신뢰성있고 확장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성과 평가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성과 평가때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저를 평가하고 저 또한 동료들을 평가해줍니다. 피어 리뷰가 필요한 성과 평가는 보통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할 수 있습니다. 성과 평가에는 평가 대상자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기여도, 결과, 프로젝트의 중요성 등을 적고, 대상자의 직무상 강점 그리고 좀 더 개발해야 할 영역에 대해서 정확하게 평가합니다.

성과 평가 기간에는 제가 저를 평가해 줄 리뷰어를 선택하고, 요청을 받은 리뷰어들이 저에 대해 정직하게 평가해줍니다. 이때 리뷰어 중에는 요청을 받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매니저는 피어 리뷰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나 현실적으로는 피어 리뷰 결과를 가지고 다른 매니저들을 설득해야 하므로 성과 평가 체계에서 여전히(아니면 당연히) 중요합니다.

성과 평가 기간에는 부담이 많이 되지만 서로에 대해서 정직하고 정확하게 평가를 해줍니다.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제가 했던 일에 대해 정확히 아는 동료들이 평가를 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습니다. 또 제 작업 내용을 정확히 아는 동료들이 제가 노력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수긍하면서 저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저를 평가할 사람들이니까요.

피어 리뷰 기반의 성과 평가 체제의 장점은 실무적 수준에서 제대로 된 업무 평가와, 수직적 보고 체계가 아닌 수평적 동료 체계에서의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인데요. 회사 전체를 놓고 보면 코드 리뷰와 마찬가지로, 누가 일을 잘하는지 또는 누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평가 표준이 피어 리뷰를 통해 전체 구성원에게 전파됩니다.

채용

회사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니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회사를 운영하는 데 첫째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피어 리뷰 문화는 사람을 뽑는 데에도 적용됩니다.

구글에 지원하는 사람들을 면접하는 면접관들은 그 후보자가 채용이 되었을 때 같이 일하게 될(같은 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같은 부문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 면접은 엔지니어가 직접 합니다. 한 두명의 엔지니어만 면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대여섯명의 엔지니어가 차례로 면접을 합니다. 면접이 끝나면 해당 후보자와 같이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어서 채용위원회에 보고합니다. 채용위원회 또한 대부분 엔지니어들로 구성됩니다. 레쥬메부터 면접 결과까지 모든 것을 종합해서 함께 일하고 싶은지를 판단합니다.

후보자가 입사했을 때 함께 일할 사람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채용과정을 훨씬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정을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책임을 나눠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할 동료를 테스트하는 인터뷰 과정에서 (엔지니어의 경우) 기술적인 질문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보다 똑똑하고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보여줄 사람인지 점검합니다. 채용위원회도 입사후보자가 회사에 채용될 경우 뛰어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검토합니다. 그 후에도 검토 절차가 더 남아 있지만 동료가 될 사람들이 후보자를 평가한 결과가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채용 절차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인재상이 인사부서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동료들이 공유하는 문화로서 회사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됩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구글이 이렇게 성공한 데에는 피어 리뷰 문화가 핵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규모와 영향력이 십몇년만에 이 정도로 클 수 있었던 것도, 이 정도 규모에서도 독특한 문화와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피어 리뷰의 공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피어 리뷰 문화에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문제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느리고 방어적인 프로세스

프로세스가 느려지고 의사결정이 보수적 또는 방어적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프로세스가 느려지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장기적으로 신뢰성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이득이 있으므로 감내할만하지요. 그런데 의사결정이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채용과정을 예로 들면, 여러명이 모여서 동등한 입장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므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반대를 하는 후보자는 보통 떨어집니다. 채용의 과정이야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뽑지 않는 것이 좋다는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때로는 몇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다같이 동의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좋을 때가 있습니다.

위기 대응 능력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할 때 피어 리뷰가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극단적인 예로 위기상황의 비행조종사들을 들 수 있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조종사들이 에어버스를 조종하다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들을 놓치고 결국 추락한 사례가 있습니다.
https://plus.google.com/106545388800257341911/posts/UkZxDff7FNQ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누군가 절대 권력과 무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결단을 내려야 추락하는 비행체를 구할 기회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토론은 무의미합니다.

다행히 제가 경험했던 구글은 위기때마다 잘 대처해 왔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고 난 후에 사후검토(Postmortem)를 철저히 하여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 기록하고 그 기록 또한 피어리뷰를 받도록 하여 조직 전체가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옹고집은 어디에나 있다

워낙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도 그 중에는 반드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코드 리뷰를 진행하면서 답답한 일들이 발생하는데요. 코드의 동작이나 속도 그리고 가독성에 아무 상관이 없는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몇 일동안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죠.

피어 리뷰의 약점은 수평적인 분위기에서는 옹고집이 왕노릇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피어 리뷰의 빛과 어둠을 살펴보았는데요. 저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저는 피어 리뷰 시스템이 좋습니다. 제가 워낙 실수가 많아서 동료들을 많이 의지하기 때문에요. 원래 피어 리뷰의 단점중에는 저 같은 실수쟁이들이 동료들을 시간을 뺐는다가 포함이 되어야 하지만 의도적으로 뺐습니다. 동료들의 희생으로 저 같은 사람이 빛을 발할 수 있으니까요. ^^;; (동료에게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7일 금요일

Pay it forward

책을 쓰면서 가능하면 쉬운 단어를 쓰려고 노력했는데요. 예를 들면, contribute는 '기여하다'대신 '보태다'라고 썼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몇 주 동안 고민해도 맘에 드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pay it forward'였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갚는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돌려갚기'라고 했는데요. 제대로 번역한 것 같나요? 솔직히 아주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니고 아직도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책에 들어갔던 'pay it forward'에 관한 이야기를 옮깁니다. 초고에서 발췌했기 때문에 출판된 책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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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의 어느날 벤자민 프랭클린이 벤자민 웹이라는 사람에게 200프랑의 돈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프랭클린은 웹과 친분이 없었다. 단지 벤자민 웹이 곤경에 빠졌기 때문에 선의로 도움을 준 것 뿐이다. 편지의 내용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돈을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빌려주는 거에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거든 제때에 빚을 갚을 수 있게 반드시 사업에 성공하세요. 그리고 당신처럼 곤경에 빠진 이를 만나면 당신도 그에게 내가 했던대로 돈을 빌려주세요. 그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요. 그 돈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갔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돌려갚기다. 영어로는 'pay it forward'다. '되갚기pay it back'라고 하면 빌렸던 돈을 채권자에게 갚는 것이다. 그런데 pay it forward라고 하면 채권자가 아닌 제 3자에게 돈을 갚는 것이다.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이는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100만원을 빌려주었다 돌려받으면 그와 나 사이에 그냥 100만원이 갔다온 것뿐이다. 그런데 필요한 사람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게 되면 100만원이라는 절대적 가치외에 다른 것들이 생겨난다. 보람과 감사다. 그냥 주는 사람은 보람을 얻고 받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된다. 이번에 받은 사람은 다음에는 베푸는 사람이 되어 보람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호의 때문에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을 사회라고 부르고 우리는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다. pay it forward는 이런식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DNA에 새겨진 사회 환원 정신

pay it forward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깊이 새겨져 있다. 실리콘밸리의 맏형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을 설립하여 크게 성공했다. 그의 집에는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젊은 엔지니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업에 투자도 했다. 말하자면 엔젤 투자였다. 투자하면서 받은 증서를 운동화 포장상자에 넣어두곤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은 회사에 투자했는지 그 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로버트 노이스의 식객중에는 젊은 스티브 잡스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젊은 시절 좌충우돌하며 코너에 몰렸을 때 무작정 노이스의 집에 쳐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심지어 노이스 가족의 가족여행에까지 따라다녔을 정도로 노이스를 의지했다고.

스티브 잡스가 세월이 흘러 로버트 노이스를 추억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햇병아리였을 때 그(로버트 노이스)가 나를 그의 날개로 품어주었다.” 어리고 모난 스티브 잡스를 사심없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도 보답하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을 도둑놈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구글과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래리 페이지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한다. 아직 젊은 래리 페이지에게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조언을 했다고 한다. 잡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에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길paying back to the system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는 로버트 노이스의 피를 잇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대가없이 나눠주기도 하고, 열정은 있지만 기반은 없는 창업가들에게 적잖은 돈을 투자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도와준다.

구글 창업자들이 처음 받은 수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공동창업한 전기공학 엔지니어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1998년 스탠포드 대학에 들렀다가 우연히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만났다. 페이지와 브린은 페이지랭크라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구글이라는 회사가 생기기 전이었고 본인들도 자기들이 만든 검색 시스템이 세상을 바꾸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때다. 벡톨샤임은 젊은 페이지와 브린에게 선뜻 10만 달러(1억원 정도)짜리 수표를 건네주었다. 그 돈으로 구글이라는 회사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구글은 15년후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다. 구글은 1조 5천억원의 기금을 가지고 구글 벤처스Google Ventures를 설립했다. 구글 벤처스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벤처 기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구글의 탄생을 도운 앤디 벡톨샤임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앤디 벡톨샤임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첫 워크스테이션인 Sun-1을 만들때 스탠포드 컴퓨터학과와 동네 전자 부품점에서 부품을 얻어다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선배들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회사들을 밀어주고 다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성공한 사람들이 구글과 같은 후배들을 밀어주면서 실리콘밸리 공동체가 된 것이다.

컴퓨터광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컴퓨터광들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밤새 프로그래밍을 하며 희열을 느낀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밤새 프로그래밍을 하다보니 여자친구(또는 남자친구)들에게 인기도 없는 찌질이로 비치기도 한다. 찌질하다 못해 오죽하면 <딜버트>라는 만화에서 댁의 아들은 엔지니어가 될 운명이라고 진단하는 의사앞에서 딜버트의 엄마가 통곡을 했을까!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자선단체 중 하나인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든 사람이 바로 학교 다닐때 사회성 결핍이라고 핀잔을 듣던 빌 게이츠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레리 페이지 등 기술 기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세상의 불평등이라는 그늘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매년 엄청난 액수를 기부하고 있다.

이런 기술 기업들의 자선 활동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들의 자선활동에는 실용주의가 깔려있다. 기술 기업의 경영자들은 본인들의 성격때문인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한다. 물론, 기업홍보나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자선단체에 흘러가는 기부금 전체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상당 액수는 단체장의 연봉을 포함하여 자선단체의 행정비로 나간다. 미국내 자선단체를 조사해보니 어떤 경우는 거의 3분의 2의 기금이 행정비로 쓰였다는 충격적인 조사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선단체들은 집행내역 자체가 투명하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비효율적이거나 기부자들의 의도와 관계없는 선교활동에 사용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은 중간에 브로커들을 모두 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빈곤계층의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하는 데 힘을 쓴다. 예를 들어, 저렴한 방법으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팀에게 상금을 준다던지, 말라리아 약을 개발한다든지, 구글 임팩트 챌린지(https://impactchallenge.withgoogle.com/) 등 현지에서 기술로 공동체를 살리려는 비영리 기관에 돈과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구글에서는 인터넷이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려고 성층권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풍선을 띄우거나 무인 비행기를 띄우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방식의 자선활동이 흔하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이고 무일푼의 청년들이 혁신적인 제품으로 성공하는 것은 밑바닥에 이런 사회환원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환원 문화는 남의 도움을 받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성공해야할 대의명분을 제공한다. 채권자에게 빚을 갚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 다음 세대에게 다시 도움을 주기 위해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200프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쳐갔는지 모르겠다. 분명 여러사람을 거쳐갔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벤자민 프랭클린을 존경하는 미국인들에게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을 깊이 심어주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의 pay it forward문화는 실리콘밸리인의 DNA에 새겨졌고, 아무도 pay it forward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지만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15년 8월 3일 월요일

스테이크 하우스 - 실리콘밸리 맛집(10)

오랜만에 실리콘밸리 맛집에 내용을 추가한다. 스테이크 하우스 경우, 원래는 유명하다는 Alexander's Steakhouse에 다녀와서 완성을 하려고 했다. 비싸기도 하지만 인연이 없는지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가볼 기회가 없어서 결국 포기. 다음에 가면 업데이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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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선댄스Sundance The Steakhouse

1921 El Camino Real, Palo Alto, CA 94306
가격: 비쌈(30~60불), 특이사항: 정장까지는 아니라도 적당히 갖춰입는 게 좋다. 티셔츠는 무리.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보통 괜찮은 스테이크하우스하면 블랙 앵구스Black Angus를 많이 떠올린다. 블랙 앵구스의 스테이크 가격이 20불에서 40불 사이다. 팔로알토 선댄스는 더 비싼 식당인데 고기의 질이나 음식의 맛을 따질때 비싸게 주고 먹을만 하다.

참고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면 블랙 앵구스가 편하다. 블랙 앵구스가 더 넓직하고 상대적으로 밝다.

알렉산더스 스테이크하우스Alexander’s Steakhouse 

10330 N Wolfe Rd, Cupertino, CA 95014
가격: 매우 비쌈(50~300불), 특이사항: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소문
집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하우스다. 소문만 들었고 가 본적은 없다. 매일 퇴근하면서 지나가는 식당인데 왠지 다른 세상의 식당이라는 느낌이다.

제일 싼 스테이크 메뉴가 40불이 넘고 왠만한 건 150불에 이르고 캐비어 메뉴는 1온즈에 250불이다! 1온즈는 28그램정도이다. 이런 식당들은 드레스코드가 있다. 옷도 정장을 입어줘야 한다. 가격이 비싸지만 음식맛은 괜찮은지 Yelp등의 평가 점수가 5점 만점에 4점으로 높은편이다.

참고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음식점은 나파 밸리Napa Valley에 있는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라는 프랑스 식당이다. 이곳은 예약자체가 미션 임파서블로 유명한 곳이고 예약 성공담이 인터넷에 떠다닐 정도다. 저녁식사 가격이 1인당 300불에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이곳에서 캐비어를 맛볼 날이 올까.

2015년 8월 2일 일요일

슈퍼인턴을 만나다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요즘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인턴제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다음 글은 "슈퍼인턴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제 책 <실리콘밸리 견문록>에 실린 글을 발췌(정확히는 출판전의 초안을 복사한 것이라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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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인턴 제도가 도입이 되었는데 요즘은 관공서부터 중소기업까지 보편적인 인력채용방식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 운영하는 인턴 제도와 의미가 좀 다른 듯 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이 방학동안 실무를 경험하는 데 의미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스펙을 위한 봉사나 기간제로 싼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제도로 보는 경향이 있나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인턴이 회사의 천민이라는 느낌이었다. 드라마라서 좀 과하게 그려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인턴은 개념이 다르다.

미국 대학교는 여름 방학이 길다. 주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수는 있겠지만 가을에 새학년이 시작된다. 겨울방학은 짧게 쉬고 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여름이 시작될쯤 한 학년이 끝나고 긴 방학에 들어간다. 여름방학은 거의 3개월 정도로 상당히 길다. 여름 방학이 길어서 계획만 잘 세우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여름에 인턴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회사들은 인턴 제도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업체들도 인턴들을 모셔와서 실제 업무에 투입한다. 실력있는 인턴들을 정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맡겨봄으로써 면접만으로 보기 힘든 업무 태도와 진짜 실력을 평가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진짜 최고의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것이다. 인턴을 지원하는 학생들은 이론으로만 배웠던 지식을 현장에서 적용해 봄으로써 현장이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인맥을 만들 수 있다.

인턴 제도는 구글에서 좋은 엔지니어를 뽑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전세계 사무소에서 연간 수천명의 인턴을 채용하고 그 중 많은 수가 정직원으로 발탁된다. 우리 팀에서도 인턴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인턴이 하나 있다.

풀타임 엔지니어가 못 푸는 문제를 맡겨라?

구글에서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너무 복잡해서 안 풀리는 문제가 나오면 옆 사람한테 이 문제는 남겨뒀다가 슈퍼 인턴한테 맡겨야 할 거 같다고 농담삼아 얘기하곤 한다. 농담이긴 하지만 실제로 인턴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경험만 부족할뿐 최고의 인재들이고 3개월간의 업무에서 깜짝놀랄만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턴 채용 과정은 이렇다. 인턴 채용은 1년 전부터 시작한다. 인턴을 채용하고 싶은 팀은 인턴이 필요한 프로젝트 제안을 1년전에 제출한다. 프로젝트가 채택되면 해당 팀에서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여름 인턴의 경우는 그 전 해의 가을부터 인턴 면접이 시작된다. 상당히 일찍 시작하는 셈이다. 따라서, 인턴 구직자도 구글에서 여름 인턴을 하려면 거의 1년전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엔지니어링 인턴 면접은 영문 레쥬메를 제출하고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기술 면접으로 들어간다. 기술 면접은 두 번의 전화면접으로 이루어지는 데 전화를 통해 45분에서 1시간 가량 기술 문제도 풀고 코드도 작성한다. 인턴이라고 해서 문제의 난이도가 낮지 않다. 정직원 면접 못지 않다. 여기서 통과하면 인턴 면접 합격자 풀에 들어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다.

인턴과 인턴 호스트의 짝짓기가 마지막 단계다. 인턴 호스트는 인턴 면접 합격자 풀에서 자기 프로젝트에 맞는 인턴을 뽑기 위해 호스트 매칭 인터뷰를 진행한다. 호스트 매칭 인터뷰는 인턴 호스트가 자기 프로젝트에 맞는 최고의 인턴을 찾는 프로세스이기도 하지만 인턴에게도 자기가 하고 싶은 고르는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주목을 받는 인턴에게 인턴 호스트의 구애가 쏟아져 프로젝트를 골라 잡는 재미를 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스크바 대학 출신 대학생 인턴을 유혹하다 

인턴 호스트는 자기가 일하는 팀과 인턴에게 맡길 프로젝트를 잘 팔아야 괜찮은 인턴을 구할 수 있다. 나도 여러명의 인턴을 차례로 만나서 얼마나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우리팀에서 일하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열심히 포장했다. 나는 호스트 매칭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는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반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다.

나는 만나는 인턴들에게 나와 일하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다룰 수 없는 스케일의 데이터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심지어 구글내에서도 우리보다 더 큰 데이터를 다루는 팀은 별로 없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우리팀이 관리하는 일부 데이터베이스의 규모와 데이터 증가율을 슬쩍 알려준다. 이 시점이 중요하다. 큰 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규모를 알려줄 때 눈에서 불이 켜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베이스가 1MB인것과 1GB인것은 규모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대략 1,000배)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1,000배 차이의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성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실제로 경험을 해보지 않고 알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내가 얘기했던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어떤 인턴은 이런 규모를 듣고 요즘 하드 디스크 용량이 많이 늘어나서 그리 놀랍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큰 고기가 아닌 것이다.

나는 건축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볼때 비슷한 건축물이라도 경험있는 건축가의 눈을 번쩍 뜨이기 하는 대단한 건축물이 있을 것이다. 그런 건축물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나 같은 문외한은 그냥 지나치고 기억도 못하지만 말이다.

인턴 채용 시즌의 막바지에 왔을때다. 그때까지도 인턴을 구하지 못했고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좋은 인턴들은 벌써 다른 팀에서 다들 모셔갔기 때문이다. 당해의 인턴 프로젝트는 접을 생각으로 별 기대없이 마지막 인턴 후보 하나만 만나보기로 했다.

구글 행아웃으로 화상 채팅을 시작했는데 상대는 모스크바에서 접속한 앳된 얼굴의 대학생이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 과학을 복수전공한 친구였는데 러시아 발음의 어눌한 영어때문에 내가 오히려 긴장이 될 정도였다. 이 친구가 쓴 논문에 대해서 설명을 간단하게 듣긴 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리팀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해 주고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베이스의 규모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의 눈에서 불이 켜지는 걸 보았다. 놀라며 정말이냐고 묻는 그 친구의 모습에 반해서 나도 불이 붙어 한참을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말주변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는 친구여서 인턴 채용 시즌이 끝나갈 때까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계별 과제

여름 방학이 시작하고 러시아에서 우리 인턴이 날아왔다. 나는 우리 인턴을 위해 총 4단계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첫 번째 단계는 몸풀기용으로 쉽지만 구글의 기술을 골고루 익힐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두번째 단계는 본격적인 핵심 프로젝트였고 3개월동안 마칠 수 있으면 내 기대치를 만족시키면서 실제로 회사에도 도움이 될만한 성과였다. 세번째 단계는 두번째 단계를 통과할 경우 할 수 있는 일인데 두번째 프로젝트를 더 크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네번째 단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준비했다.

첫 번째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모두 연계된 일로 준비했다. 따라서, 전 단계를 마치면 다음 단계를 시작할 준비가 되고 한 단계를 마치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더 큰 규모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내 목표는 인턴이 2단계까지 마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3단계는 기대 이상의 일이었고 4단계는 사실 나도 풀지 못하는 문제였다.

러시아에서 건너온 이 친구가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 할수 있을까 걱정은 했지만 직접 도와주지는 않고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했다. 점심도 혼자 먹도록 방치했다(사실 일부러 방치한 건 아니고 무심한 내 생격 탓이다). 주위의 다른 미국 인턴들은 작은 일이라도 질문이 있으면 귀찮을 정도롤 물어보는데 우리 인턴은 질문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나가다 말을 걸면 구글의 코드베이스와 내부 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파헤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3개월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끝내는데에는 짧은 시간이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인턴 호스트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것이 정도다. 걱정은 되었는데 그래도 방치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1단계를 끝냈다고 왔다. 그리고 2단계를 진행하고 있단다. 그리고 인턴 시작 후 한달쯤 지났을때 2단계를 끝내버렸다. 2단계 일을 수학적으로 검증하는 테스트까지 마쳤단고 한다. 우리팀의 일은 큰 규모의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라 검증을 하려면 통계적인 센스가 필요하다. 스스로 검증까지 마친것이다. 한달이 채 안되어서 기대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3단계도 인턴 생활 두달째에 끝내버렸다. 우리 인턴이 3단계에 들어섰을 때 내가 곤란해졌다. 4단계는 아이디어만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 문제를 어떻게 풀지 전혀 몰랐고. 결국 3단계가 끝났을 때 더 이상 할일이 없었다. 3단계 이후로는 우리 인턴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진행했다. 인턴 일정이 끝나갈 때쯤에는 학교로 돌아갈 이 친구를 졸업후에 어떻게 구글로 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인턴 쫑 파티 

인턴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 구글 인턴들과 인턴 호스트들이 모여서 파티를 한다. 그 해에는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만을 돌면서 파티를 했다. 정원 2,000명짜리 크루즈 여객선 위에서 식사를 하고 안개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보며 미래의 구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A4. 인턴들과 탔던 유람선, 샌프란시스코 벨 

사무실안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던 인턴들이 시원한 샌프란시스코만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구글이 일만하는 지루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턴 쫑 파티에는 구글 엔지니어링 부서의 최고 책임자도 참석한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하는데 여기저기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다.

우리 인턴은 이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직원으로 돌아오다

우리 인턴은 인턴 과정을 마치고 학업에 복귀하려고 모스크바 대학으로 돌아갔다. 우리팀은 이 친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몇 주후 마침내 회사에서 우리 인턴에게 정직원 제의를 했다. 학업을 다 마치면 구글로 오라는 제의였다. 이제 우리 인턴만 도장을 찍으면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소식이 없었다. 궁금하던 차에 회사 리쿠르팅 팀에서 경과를 알려주었다. 우리 인턴이 러시아의 얀덱스로부터도 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얀덱스는 러시아 최고의 인터넷 소프트웨어 업체로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 같은 회사다. 나는 우리 인턴이 구글로 오기를 바랬지만 따로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어디를 가나 성공할 수 있고 얀덱스가 더 좋은 기회라고 스스로 판단한다면 그것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무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몇 달후 우리 인턴의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구글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우리 인턴이 우리 팀을 선택해서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인턴이 정직원으로 전환할때 자기가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다. 보통 인턴들은 새 팀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부러 우리 팀을 지정해서 온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째질 지경이었다.

돌아온 우리 인턴과 함께 몇 년째 일하고 있다. 나는 기술적으로 위험한 결정을 할때 우리 인턴과 상의를 한다. 혹시 내가 확인하지 못한 문제점은 없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묻기 위해서. 큰 규모의 데이터를 다루다가 수학적인 센스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우리 인턴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떤 때는 거의 강의 수준의 토의를 마치고 복잡한 문제가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구나라고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인턴 제도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낸다.

  • 첫째, 기업은 면접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천리마를 가려낼 수 있고 가려낸 천리마에게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다. 
  • 둘째, 학생들은 대학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현장을 경험하고 여름방학동안 적지않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 셋째, 대학은 학생들이 현장의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 
  • 넷째, 정부는 외국에 있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통로로서 국가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인턴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나는 실제로 러시아에서 인턴을 두 명이나 뽑은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인턴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면 학생, 기업, 대학, 국가가 동반 성장할 수 있다.

2015년 6월 8일 월요일

글을 쓰는 이유

생각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글보다 말이 어렵다. 짧은 시간에 조리있게 말하는게 힘들고 맞는 단어를 생각해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쓰고 싶지 않은 단어들(예를 들어, '개인적으로')이 꽤 있는데, 그에 반하여 가진 어휘는 빈약하다. 여기에 발성과 발음도 좋지 않아 말을 하는 것이 더 힘들다. 발성과 발음은 둘째 치고라도 나도 내가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모를 때 부끄러워 숨고싶다.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나만의 페이스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글을 쓴다. 글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고칠 수 있다. 당장 딱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지만 나중에 여러번 고치다보면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포지션을 정확히 할 수 있다. 글을 다시 읽어보면 포인트가 없이 중언부언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싶은 성향 때문인데 그러다보니 내 주장의 핵심이 사라져 버린다. 다시 읽으면서 핵심을 강조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울 수 있다.

물론 말을 할때도 생각을 하지만 글을 쓰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다듬을 수 있다. 여러번 다듬어서 글을 완성하고 나면 말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2015년 6월 4일 목요일

한국경제 인터뷰 기사와 자세한 내용

지난번에 한국경제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일반인도 프로그래밍 기술 익혀야…활용분야 무궁무진하죠"라는 제목으로 안정락 기자님이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서면으로 답변한 내용을 옮깁니다. 

1.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소프트웨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 또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컴퓨터에 늦게 입문했습니다. 시골출신이라 어린 시절 컴퓨터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대학 입학때 1지망에서 떨어져서 2지망이었던 전남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우연히 들어갔습니다. 프로그래밍의 재미를 알게된 건 학부시절 F폭격기라는 별명이 붙은 전남대학교 이칠우 교수님의 C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면서부터였습니다. 어려운 프로그래밍 프로젝트에서 오는 성취감이 대단했습니다.

2.구글에 입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지원했고, 채용 과정은 어땠습니까?

어려웠습니다. 입사지원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4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입사지원한 것이 9년전쯤이었는데 지금은 채용절차가 많이 간소화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구글에 입사하기전에 국내 벤처기업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IT업계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회사가 구글이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도 모르고 레쥬메를 넣었고 여러차례의 관문을 거쳤습니다. 총 7번의 일대일 면접을 보았는데 모두 기술면접이었습니다. 면접관은 여러 나라의 구글 사무소에서 일하는 구글 엔지니어들이었습니다.

입사 지원할 때는 몰랐는데 회사에 출근하고 보니 제가 구글 코리아의 첫번째 엔지니어였습니다.

3.구글에서 한국인으로 지내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많이 느끼고 계십니까? 장, 단점은?

구글에도 한국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 출신에 비해서 수적으로나 영향력면으로나 드러나지 않는 편입니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신중하게 일처리를 하고 조직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중함과 적응력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틀려도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치고 조직에 무작정 순응하지 않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문화에서 한국인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어려워 보일때도 있습니다.

4.국내에서 SW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글과 같은 직장에 가고 싶어할 텐데, 이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구글이라는 회사는 어떤 회사입니까?

구글은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특별한 조언은 없습니다. 저도 특별한 비결이 있진 않았습니다. 그저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으며 어려운 일에 도전하다보면 좋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좋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면 구글 뿐만 아니라 어느 회사라도 갈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컴퓨터는 늦게 시작했지만 지난 20년간 항상 부족하다고 여기며 차근차근 걸어왔습니다.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이 저를 더 넓은 무대로 소개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도전했던 것들이 성공하기도 하면서 구글 본사까지 왔습니다.

5.최근에 쓴 책은 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실리콘밸리 견문록>이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구글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엮었습니다. 60년전 과수원으로 가득했던 촌동네가 어떻게 실리콘밸리가 되었는지, 빠르게 변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구글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는지, 토익 성적 하나 없는 지방국립대 출신 엔지니어가 어떻게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정착했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6.일반인들도 SW 능력을 갖고 있으면 좋은가요? 좋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인들이 전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수가 되었습니다. 컴퓨터 기술은 전기같은 일반 기술(general technology)입니다. 컴퓨터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죠. 우리는 학교에서 전기의 원리와 응용 기술을 기본으로 배우기 때문에 편리한 전기를 안전하게 쓸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동작원리를 이해하는 것도 편리한 컴퓨터 기술을 안전하게 쓰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일반인들도 간단한 프로그래밍 언어,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매크로같은 상대적으로 쉬운 언어라도 익히면 자기 분야의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꼭 IT분야만이 아니라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7.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책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한가지만 꼽으라면 억지로 실리콘밸리를 만들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는 역사적 배경위에 특별한 사람들이 만나면서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냥 겉으로 보여지는 실리콘밸리 회사의 운영방식을 우리나라 기업에 무턱대고 도입하는 것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실리콘밸리는 산업 육성 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실리콘 트랜지스터, 마이크로프로세서, 개인용 컴퓨터 등은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들인데 이런 기술들은 정부나 학계 전문가들이 키운 것이 아닙니다. 잡초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세상을 바꾼 것들이죠. 농경시대의 방식으로 미리 계획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면서 잡초를 뽑아버리면 혁신은 없습니다. 적어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문화는 만들 수 없습니다.

맞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세계 어느 기업과도 공정하게 경쟁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6월 3일 수요일

책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 풀이

제 책 <실리콘밸리 견문록>을 읽으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않으셨나요? 제 책은 읽기 쉬운 책인데 두번 읽는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속에 3개의 코드를 숨겨놓았어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3개의 코드는 영어 메시지였구요. CONTRIBUTION보탬, CONNECTION이음, LIFE삶입니다. <실리콘밸리 견문록>을 대표하는 단어가 contribution입니다. 그럼 다음 단어들은 왜 넣었을까요? 처음 책을 쓰면서 (저 혼자) 계획했던 다음 책들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이음'과 '삶'이죠.

책속에 숫자들이 숨어있는데 숫자 하나가 아스키ASCII 코드(컴퓨터 부호 표준의 하나)의 알파벳을 나타냅니다.

첫번째 코드는 1부 첫번째 스토리부터 각 스토리의 끝에 아스키 코드 하나씩 들어가 있습니다. 그걸 모으면 67(C), 79(O), 78(N), 84(T), 82(R), 73(I), 66(B), 85(U), 84(T), 73(I), 79(O), 78(N)이 됩니다. CONTRIBUTION입니다.

두번째 코드는 240페이지 사진에 들어있습니다. 사진에 작고 동그란 점들이 컴퓨터 정보의 최소단위인 비트입니다. 동그라미가 2진수 1입니다. 동그란 점들을 나열하면 8비트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쭉 연결하면 CONNECTION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마지막 코드는 색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288페이지에 보면 'LIFE'라는 단어 옆에 표시된 페이지번호가 조금 이상해보이지 않나요? 67, 79, 68, 69은 각각 C, O, D, E의 아스키 코드입니다. 여기서는 'LIFE'가 코드라는 뜻입니다. 그 전의 두 코드와 달리 살짝 비틀어놓았습니다.


이렇게 CONTRIBUTION 보탬, CONNECTION 이음, LIFE 삶이라는 메시지를 숨겨놓았는데 눈치 채셨나요? ^^

'이스터 에그를 찾아라' 이벤트를 공지하면서 많이 찾아봐야 2개 정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3개의 코드를 모두 찾은 분이 있었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았나봐요. OT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