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7일 금요일

Pay it forward

책을 쓰면서 가능하면 쉬운 단어를 쓰려고 노력했는데요. 예를 들면, contribute는 '기여하다'대신 '보태다'라고 썼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몇 주 동안 고민해도 맘에 드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pay it forward'였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갚는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돌려갚기'라고 했는데요. 제대로 번역한 것 같나요? 솔직히 아주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니고 아직도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책에 들어갔던 'pay it forward'에 관한 이야기를 옮깁니다. 초고에서 발췌했기 때문에 출판된 책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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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의 어느날 벤자민 프랭클린이 벤자민 웹이라는 사람에게 200프랑의 돈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프랭클린은 웹과 친분이 없었다. 단지 벤자민 웹이 곤경에 빠졌기 때문에 선의로 도움을 준 것 뿐이다. 편지의 내용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돈을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빌려주는 거에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거든 제때에 빚을 갚을 수 있게 반드시 사업에 성공하세요. 그리고 당신처럼 곤경에 빠진 이를 만나면 당신도 그에게 내가 했던대로 돈을 빌려주세요. 그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요. 그 돈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갔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돌려갚기다. 영어로는 'pay it forward'다. '되갚기pay it back'라고 하면 빌렸던 돈을 채권자에게 갚는 것이다. 그런데 pay it forward라고 하면 채권자가 아닌 제 3자에게 돈을 갚는 것이다.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이는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100만원을 빌려주었다 돌려받으면 그와 나 사이에 그냥 100만원이 갔다온 것뿐이다. 그런데 필요한 사람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게 되면 100만원이라는 절대적 가치외에 다른 것들이 생겨난다. 보람과 감사다. 그냥 주는 사람은 보람을 얻고 받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된다. 이번에 받은 사람은 다음에는 베푸는 사람이 되어 보람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호의 때문에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을 사회라고 부르고 우리는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다. pay it forward는 이런식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DNA에 새겨진 사회 환원 정신

pay it forward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깊이 새겨져 있다. 실리콘밸리의 맏형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을 설립하여 크게 성공했다. 그의 집에는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젊은 엔지니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업에 투자도 했다. 말하자면 엔젤 투자였다. 투자하면서 받은 증서를 운동화 포장상자에 넣어두곤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은 회사에 투자했는지 그 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로버트 노이스의 식객중에는 젊은 스티브 잡스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젊은 시절 좌충우돌하며 코너에 몰렸을 때 무작정 노이스의 집에 쳐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심지어 노이스 가족의 가족여행에까지 따라다녔을 정도로 노이스를 의지했다고.

스티브 잡스가 세월이 흘러 로버트 노이스를 추억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햇병아리였을 때 그(로버트 노이스)가 나를 그의 날개로 품어주었다.” 어리고 모난 스티브 잡스를 사심없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도 보답하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을 도둑놈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구글과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래리 페이지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한다. 아직 젊은 래리 페이지에게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조언을 했다고 한다. 잡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에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길paying back to the system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는 로버트 노이스의 피를 잇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대가없이 나눠주기도 하고, 열정은 있지만 기반은 없는 창업가들에게 적잖은 돈을 투자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도와준다.

구글 창업자들이 처음 받은 수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공동창업한 전기공학 엔지니어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1998년 스탠포드 대학에 들렀다가 우연히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만났다. 페이지와 브린은 페이지랭크라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구글이라는 회사가 생기기 전이었고 본인들도 자기들이 만든 검색 시스템이 세상을 바꾸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때다. 벡톨샤임은 젊은 페이지와 브린에게 선뜻 10만 달러(1억원 정도)짜리 수표를 건네주었다. 그 돈으로 구글이라는 회사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구글은 15년후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다. 구글은 1조 5천억원의 기금을 가지고 구글 벤처스Google Ventures를 설립했다. 구글 벤처스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벤처 기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구글의 탄생을 도운 앤디 벡톨샤임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앤디 벡톨샤임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첫 워크스테이션인 Sun-1을 만들때 스탠포드 컴퓨터학과와 동네 전자 부품점에서 부품을 얻어다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선배들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회사들을 밀어주고 다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성공한 사람들이 구글과 같은 후배들을 밀어주면서 실리콘밸리 공동체가 된 것이다.

컴퓨터광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컴퓨터광들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밤새 프로그래밍을 하며 희열을 느낀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밤새 프로그래밍을 하다보니 여자친구(또는 남자친구)들에게 인기도 없는 찌질이로 비치기도 한다. 찌질하다 못해 오죽하면 <딜버트>라는 만화에서 댁의 아들은 엔지니어가 될 운명이라고 진단하는 의사앞에서 딜버트의 엄마가 통곡을 했을까!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자선단체 중 하나인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든 사람이 바로 학교 다닐때 사회성 결핍이라고 핀잔을 듣던 빌 게이츠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레리 페이지 등 기술 기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세상의 불평등이라는 그늘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매년 엄청난 액수를 기부하고 있다.

이런 기술 기업들의 자선 활동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들의 자선활동에는 실용주의가 깔려있다. 기술 기업의 경영자들은 본인들의 성격때문인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한다. 물론, 기업홍보나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자선단체에 흘러가는 기부금 전체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상당 액수는 단체장의 연봉을 포함하여 자선단체의 행정비로 나간다. 미국내 자선단체를 조사해보니 어떤 경우는 거의 3분의 2의 기금이 행정비로 쓰였다는 충격적인 조사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선단체들은 집행내역 자체가 투명하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비효율적이거나 기부자들의 의도와 관계없는 선교활동에 사용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은 중간에 브로커들을 모두 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빈곤계층의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하는 데 힘을 쓴다. 예를 들어, 저렴한 방법으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팀에게 상금을 준다던지, 말라리아 약을 개발한다든지, 구글 임팩트 챌린지(https://impactchallenge.withgoogle.com/) 등 현지에서 기술로 공동체를 살리려는 비영리 기관에 돈과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구글에서는 인터넷이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려고 성층권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풍선을 띄우거나 무인 비행기를 띄우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방식의 자선활동이 흔하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이고 무일푼의 청년들이 혁신적인 제품으로 성공하는 것은 밑바닥에 이런 사회환원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환원 문화는 남의 도움을 받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성공해야할 대의명분을 제공한다. 채권자에게 빚을 갚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 다음 세대에게 다시 도움을 주기 위해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200프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쳐갔는지 모르겠다. 분명 여러사람을 거쳐갔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벤자민 프랭클린을 존경하는 미국인들에게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을 깊이 심어주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의 pay it forward문화는 실리콘밸리인의 DNA에 새겨졌고, 아무도 pay it forward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지만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