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일 일요일

슈퍼인턴을 만나다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요즘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인턴제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다음 글은 "슈퍼인턴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제 책 <실리콘밸리 견문록>에 실린 글을 발췌(정확히는 출판전의 초안을 복사한 것이라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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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인턴 제도가 도입이 되었는데 요즘은 관공서부터 중소기업까지 보편적인 인력채용방식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 운영하는 인턴 제도와 의미가 좀 다른 듯 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이 방학동안 실무를 경험하는 데 의미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스펙을 위한 봉사나 기간제로 싼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제도로 보는 경향이 있나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인턴이 회사의 천민이라는 느낌이었다. 드라마라서 좀 과하게 그려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인턴은 개념이 다르다.

미국 대학교는 여름 방학이 길다. 주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수는 있겠지만 가을에 새학년이 시작된다. 겨울방학은 짧게 쉬고 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여름이 시작될쯤 한 학년이 끝나고 긴 방학에 들어간다. 여름방학은 거의 3개월 정도로 상당히 길다. 여름 방학이 길어서 계획만 잘 세우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여름에 인턴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회사들은 인턴 제도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업체들도 인턴들을 모셔와서 실제 업무에 투입한다. 실력있는 인턴들을 정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맡겨봄으로써 면접만으로 보기 힘든 업무 태도와 진짜 실력을 평가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진짜 최고의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것이다. 인턴을 지원하는 학생들은 이론으로만 배웠던 지식을 현장에서 적용해 봄으로써 현장이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인맥을 만들 수 있다.

인턴 제도는 구글에서 좋은 엔지니어를 뽑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전세계 사무소에서 연간 수천명의 인턴을 채용하고 그 중 많은 수가 정직원으로 발탁된다. 우리 팀에서도 인턴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인턴이 하나 있다.

풀타임 엔지니어가 못 푸는 문제를 맡겨라?

구글에서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너무 복잡해서 안 풀리는 문제가 나오면 옆 사람한테 이 문제는 남겨뒀다가 슈퍼 인턴한테 맡겨야 할 거 같다고 농담삼아 얘기하곤 한다. 농담이긴 하지만 실제로 인턴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경험만 부족할뿐 최고의 인재들이고 3개월간의 업무에서 깜짝놀랄만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턴 채용 과정은 이렇다. 인턴 채용은 1년 전부터 시작한다. 인턴을 채용하고 싶은 팀은 인턴이 필요한 프로젝트 제안을 1년전에 제출한다. 프로젝트가 채택되면 해당 팀에서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여름 인턴의 경우는 그 전 해의 가을부터 인턴 면접이 시작된다. 상당히 일찍 시작하는 셈이다. 따라서, 인턴 구직자도 구글에서 여름 인턴을 하려면 거의 1년전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엔지니어링 인턴 면접은 영문 레쥬메를 제출하고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기술 면접으로 들어간다. 기술 면접은 두 번의 전화면접으로 이루어지는 데 전화를 통해 45분에서 1시간 가량 기술 문제도 풀고 코드도 작성한다. 인턴이라고 해서 문제의 난이도가 낮지 않다. 정직원 면접 못지 않다. 여기서 통과하면 인턴 면접 합격자 풀에 들어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다.

인턴과 인턴 호스트의 짝짓기가 마지막 단계다. 인턴 호스트는 인턴 면접 합격자 풀에서 자기 프로젝트에 맞는 인턴을 뽑기 위해 호스트 매칭 인터뷰를 진행한다. 호스트 매칭 인터뷰는 인턴 호스트가 자기 프로젝트에 맞는 최고의 인턴을 찾는 프로세스이기도 하지만 인턴에게도 자기가 하고 싶은 고르는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주목을 받는 인턴에게 인턴 호스트의 구애가 쏟아져 프로젝트를 골라 잡는 재미를 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스크바 대학 출신 대학생 인턴을 유혹하다 

인턴 호스트는 자기가 일하는 팀과 인턴에게 맡길 프로젝트를 잘 팔아야 괜찮은 인턴을 구할 수 있다. 나도 여러명의 인턴을 차례로 만나서 얼마나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우리팀에서 일하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열심히 포장했다. 나는 호스트 매칭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는 열정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반 세일즈맨이 되는 것이다.

나는 만나는 인턴들에게 나와 일하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다룰 수 없는 스케일의 데이터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심지어 구글내에서도 우리보다 더 큰 데이터를 다루는 팀은 별로 없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우리팀이 관리하는 일부 데이터베이스의 규모와 데이터 증가율을 슬쩍 알려준다. 이 시점이 중요하다. 큰 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규모를 알려줄 때 눈에서 불이 켜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베이스가 1MB인것과 1GB인것은 규모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대략 1,000배)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1,000배 차이의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성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실제로 경험을 해보지 않고 알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내가 얘기했던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어떤 인턴은 이런 규모를 듣고 요즘 하드 디스크 용량이 많이 늘어나서 그리 놀랍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큰 고기가 아닌 것이다.

나는 건축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볼때 비슷한 건축물이라도 경험있는 건축가의 눈을 번쩍 뜨이기 하는 대단한 건축물이 있을 것이다. 그런 건축물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나 같은 문외한은 그냥 지나치고 기억도 못하지만 말이다.

인턴 채용 시즌의 막바지에 왔을때다. 그때까지도 인턴을 구하지 못했고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좋은 인턴들은 벌써 다른 팀에서 다들 모셔갔기 때문이다. 당해의 인턴 프로젝트는 접을 생각으로 별 기대없이 마지막 인턴 후보 하나만 만나보기로 했다.

구글 행아웃으로 화상 채팅을 시작했는데 상대는 모스크바에서 접속한 앳된 얼굴의 대학생이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 과학을 복수전공한 친구였는데 러시아 발음의 어눌한 영어때문에 내가 오히려 긴장이 될 정도였다. 이 친구가 쓴 논문에 대해서 설명을 간단하게 듣긴 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리팀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해 주고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베이스의 규모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의 눈에서 불이 켜지는 걸 보았다. 놀라며 정말이냐고 묻는 그 친구의 모습에 반해서 나도 불이 붙어 한참을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말주변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는 친구여서 인턴 채용 시즌이 끝나갈 때까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계별 과제

여름 방학이 시작하고 러시아에서 우리 인턴이 날아왔다. 나는 우리 인턴을 위해 총 4단계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첫 번째 단계는 몸풀기용으로 쉽지만 구글의 기술을 골고루 익힐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두번째 단계는 본격적인 핵심 프로젝트였고 3개월동안 마칠 수 있으면 내 기대치를 만족시키면서 실제로 회사에도 도움이 될만한 성과였다. 세번째 단계는 두번째 단계를 통과할 경우 할 수 있는 일인데 두번째 프로젝트를 더 크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네번째 단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준비했다.

첫 번째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모두 연계된 일로 준비했다. 따라서, 전 단계를 마치면 다음 단계를 시작할 준비가 되고 한 단계를 마치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더 큰 규모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내 목표는 인턴이 2단계까지 마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3단계는 기대 이상의 일이었고 4단계는 사실 나도 풀지 못하는 문제였다.

러시아에서 건너온 이 친구가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 할수 있을까 걱정은 했지만 직접 도와주지는 않고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했다. 점심도 혼자 먹도록 방치했다(사실 일부러 방치한 건 아니고 무심한 내 생격 탓이다). 주위의 다른 미국 인턴들은 작은 일이라도 질문이 있으면 귀찮을 정도롤 물어보는데 우리 인턴은 질문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나가다 말을 걸면 구글의 코드베이스와 내부 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파헤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3개월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끝내는데에는 짧은 시간이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땐 인턴 호스트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것이 정도다. 걱정은 되었는데 그래도 방치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1단계를 끝냈다고 왔다. 그리고 2단계를 진행하고 있단다. 그리고 인턴 시작 후 한달쯤 지났을때 2단계를 끝내버렸다. 2단계 일을 수학적으로 검증하는 테스트까지 마쳤단고 한다. 우리팀의 일은 큰 규모의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라 검증을 하려면 통계적인 센스가 필요하다. 스스로 검증까지 마친것이다. 한달이 채 안되어서 기대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3단계도 인턴 생활 두달째에 끝내버렸다. 우리 인턴이 3단계에 들어섰을 때 내가 곤란해졌다. 4단계는 아이디어만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 문제를 어떻게 풀지 전혀 몰랐고. 결국 3단계가 끝났을 때 더 이상 할일이 없었다. 3단계 이후로는 우리 인턴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진행했다. 인턴 일정이 끝나갈 때쯤에는 학교로 돌아갈 이 친구를 졸업후에 어떻게 구글로 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인턴 쫑 파티 

인턴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 구글 인턴들과 인턴 호스트들이 모여서 파티를 한다. 그 해에는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만을 돌면서 파티를 했다. 정원 2,000명짜리 크루즈 여객선 위에서 식사를 하고 안개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보며 미래의 구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A4. 인턴들과 탔던 유람선, 샌프란시스코 벨 

사무실안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던 인턴들이 시원한 샌프란시스코만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구글이 일만하는 지루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턴 쫑 파티에는 구글 엔지니어링 부서의 최고 책임자도 참석한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하는데 여기저기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다.

우리 인턴은 이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직원으로 돌아오다

우리 인턴은 인턴 과정을 마치고 학업에 복귀하려고 모스크바 대학으로 돌아갔다. 우리팀은 이 친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몇 주후 마침내 회사에서 우리 인턴에게 정직원 제의를 했다. 학업을 다 마치면 구글로 오라는 제의였다. 이제 우리 인턴만 도장을 찍으면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소식이 없었다. 궁금하던 차에 회사 리쿠르팅 팀에서 경과를 알려주었다. 우리 인턴이 러시아의 얀덱스로부터도 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얀덱스는 러시아 최고의 인터넷 소프트웨어 업체로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 같은 회사다. 나는 우리 인턴이 구글로 오기를 바랬지만 따로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어디를 가나 성공할 수 있고 얀덱스가 더 좋은 기회라고 스스로 판단한다면 그것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무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몇 달후 우리 인턴의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구글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우리 인턴이 우리 팀을 선택해서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인턴이 정직원으로 전환할때 자기가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다. 보통 인턴들은 새 팀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부러 우리 팀을 지정해서 온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째질 지경이었다.

돌아온 우리 인턴과 함께 몇 년째 일하고 있다. 나는 기술적으로 위험한 결정을 할때 우리 인턴과 상의를 한다. 혹시 내가 확인하지 못한 문제점은 없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묻기 위해서. 큰 규모의 데이터를 다루다가 수학적인 센스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우리 인턴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떤 때는 거의 강의 수준의 토의를 마치고 복잡한 문제가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구나라고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인턴 제도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낸다.

  • 첫째, 기업은 면접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천리마를 가려낼 수 있고 가려낸 천리마에게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다. 
  • 둘째, 학생들은 대학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현장을 경험하고 여름방학동안 적지않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 셋째, 대학은 학생들이 현장의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 
  • 넷째, 정부는 외국에 있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통로로서 국가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인턴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나는 실제로 러시아에서 인턴을 두 명이나 뽑은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인턴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면 학생, 기업, 대학, 국가가 동반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