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2일 목요일

운칠기삼 - 불운도 운이다

지도교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나 지난 얘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는 거의 이십년이나 차이나는 후배들도 있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하는 재학생 후배들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구글에 입사할 수 있느냐고.

나는 한 후배에게 평소에 꾸준하게 전공관련 실력을 쌓을것과 기술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면접 기술 그리고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마디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던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그래봐야 3할이다. 나머지 7할은 운이라고 알려줬다. 최상의 컨디션이어야 하고 나와 합이 잘맞는 면접관을 만나야 하고 등등. 후배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나의 추가설명을 듣고 이해가 된듯했다.

그 자리에서는 긴 이야기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한것이 있다. 불운도 운이라는 이야기.

10년전 유명한 해외 기업에 지원하겠다고 결심했을때 주위에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선후배나 지인중에 외국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레쥬메를 쓰는것부터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할수없이 인터넷과 짐작으로 공부를 했다. 전공 서적부터 당시에 유행하는 개발방법론까지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모조리 훑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준비도 했었다.

자기소개 프리젠테이션을 영어로 준비했었는데 꽤 열심히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술면접에서 자기소개는 분위기를 만들기위한 인사정도일뿐 내가 상상했던 그럴듯한 프리젠테이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실무면접이니까.

나는 내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 3개를 뽑아서 어떤 프로젝트였고 문제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었는지를 압축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마지막엔 그 3가지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가 가족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그걸 영어로 연습을 했고 돈까스집에서 회사 동료에게 시연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를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않아서 맥북이라는 고가의 노트북을 구입해서 발표자료를 따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셈이었는데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나. 불운이었다.

면접날이었다. 두 명이 마주보며 회의를 할 수 있는 크기의 하얀 책상 한쪽에 앉아서 첫 면접관을 기다렸다. 긴장은 했지만 준비해간 하얀 맥북을 일부러 보이라고 책상 한쪽끝에 놓고 살짝 열어두었다. 약속 시간을 한참 넘겨서 면접관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면접실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온 면접관이 서울 강남의 교통체증 때문에 늦은것이다. 급하게 오느라 미리보고 와야할 내 레쥬메를 읽어보지 못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때다 싶어서 재빨리 제안을 했다. 내게 5분만 주면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겠다고. 원래 15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이었지만 단 1분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던 면접관앞에서 짧은 영어로 내 가족소개까지 끝냈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칫 시작부터 꼬일뻔했는데 내 마음속으로는 홈런을 날렸고 나는 그날 마지막 면접까지 모든걸 쏟아부었다. 5분짜리 자기소개가 7시간의 면접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열의만큼은 7시간을 지배하고 남았을것이다. 첫 5분이 답답한 마음으로 온갖 준비를 했던 간절함에 불을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몇주후에 합격 전화를 받을수 있었다.

운이 없어 쓸데없는 것까지 준비해야 했는데, 또 한번의 불운은 그것을 행운으로 바꿔주었다. 운칠기삼이라 했는데 돌아보면 불운도 운이었다.

어쩌면 '기삼'이 지극하면 행운도 불운도 크게 상관없는 것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