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2일 목요일

운칠기삼 - 불운도 운이다

지도교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나 지난 얘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는 거의 이십년이나 차이나는 후배들도 있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하는 재학생 후배들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구글에 입사할 수 있느냐고.

나는 한 후배에게 평소에 꾸준하게 전공관련 실력을 쌓을것과 기술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면접 기술 그리고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마디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던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그래봐야 3할이다. 나머지 7할은 운이라고 알려줬다. 최상의 컨디션이어야 하고 나와 합이 잘맞는 면접관을 만나야 하고 등등. 후배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나의 추가설명을 듣고 이해가 된듯했다.

그 자리에서는 긴 이야기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한것이 있다. 불운도 운이라는 이야기.

10년전 유명한 해외 기업에 지원하겠다고 결심했을때 주위에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선후배나 지인중에 외국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레쥬메를 쓰는것부터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할수없이 인터넷과 짐작으로 공부를 했다. 전공 서적부터 당시에 유행하는 개발방법론까지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모조리 훑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준비도 했었다.

자기소개 프리젠테이션을 영어로 준비했었는데 꽤 열심히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술면접에서 자기소개는 분위기를 만들기위한 인사정도일뿐 내가 상상했던 그럴듯한 프리젠테이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실무면접이니까.

나는 내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 3개를 뽑아서 어떤 프로젝트였고 문제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었는지를 압축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마지막엔 그 3가지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가 가족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그걸 영어로 연습을 했고 돈까스집에서 회사 동료에게 시연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를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않아서 맥북이라는 고가의 노트북을 구입해서 발표자료를 따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셈이었는데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나. 불운이었다.

면접날이었다. 두 명이 마주보며 회의를 할 수 있는 크기의 하얀 책상 한쪽에 앉아서 첫 면접관을 기다렸다. 긴장은 했지만 준비해간 하얀 맥북을 일부러 보이라고 책상 한쪽끝에 놓고 살짝 열어두었다. 약속 시간을 한참 넘겨서 면접관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면접실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온 면접관이 서울 강남의 교통체증 때문에 늦은것이다. 급하게 오느라 미리보고 와야할 내 레쥬메를 읽어보지 못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때다 싶어서 재빨리 제안을 했다. 내게 5분만 주면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겠다고. 원래 15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이었지만 단 1분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던 면접관앞에서 짧은 영어로 내 가족소개까지 끝냈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칫 시작부터 꼬일뻔했는데 내 마음속으로는 홈런을 날렸고 나는 그날 마지막 면접까지 모든걸 쏟아부었다. 5분짜리 자기소개가 7시간의 면접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열의만큼은 7시간을 지배하고 남았을것이다. 첫 5분이 답답한 마음으로 온갖 준비를 했던 간절함에 불을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몇주후에 합격 전화를 받을수 있었다.

운이 없어 쓸데없는 것까지 준비해야 했는데, 또 한번의 불운은 그것을 행운으로 바꿔주었다. 운칠기삼이라 했는데 돌아보면 불운도 운이었다.

어쩌면 '기삼'이 지극하면 행운도 불운도 크게 상관없는 것일수도...

2016년 7월 22일 금요일

공유경제 vs. 전통경제


긴 여행후 공유산업에 대한 시각이 좀 바뀌었다. 혁신이긴 한데, 오프라인에서 오랫동안 다져진 검증 시스템과 안전망이 결여되어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품질검증과 안전보장을 무자격의 사용자에게 떠넘기고 있음을 알았다. 인터넷 업계에 몸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혁신의 한계를 경험했다고 할까.

하와이였다. Airbnb로 아파트유닛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은퇴자 아파트였다. 열쇠를 받기위해 집주인을 만나야하는데 정문이 아니고 눈에 안띄는 곳에서 만나자고 할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했다. 밤에 심한 바람과 창문앞 고속도로 때문에 소음이 심했는데 창문마져 깨져있어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집주인이 처음에 은퇴자 아파트라 사람들이 소음에 예민하다고 신신당부해서 거의 죽은듯이 지냈는데 우린 소음때문에 잠을 설쳤다. 배수관이 막혀서 부엌싱크와 세탁기에서 물 역류했다. 그럼에도 집주인이 이 집은 자기 부모님 은퇴후 유일한 수입원이라며 사정해서 리뷰는 쓰지 않았다.

Airbnb의 다른 사용자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리뷰를 써야하지만, 상대는 회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것 때문에 결국 쓰지 않았다. 무자격 서비스 제공자, 사용자 수준에서 이뤄지는 품질검증, 문제발생시 절차부재, 상업용이 아닌 물건이 상업용으로 거래되는 등 공유경제의 한계를 경험했다.

비효율적이고 선택의 폭이 좁다고 생각했던 오프라인 숙박서비스는 오랜시간 품질검증과 안전망을 구축해왔던것임을 깨달았다. 전문화된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 집중을 하면서 나름대로 최적화를 했던것이다. 그리고 비효율이라고 생각했던것이 경험에서 만들어진 완충장치였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반면 "전통"적인 서비스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경험했다. 미니밴이 필요해서 하와이에서 UberXL을 탈 계획을 세웠다. 하와이에 도착했는데 왠일인지 UberXL 서비스 불가였다.  6인가족, 짐 12개 들고 낯선 공항에서 당황했다.

우왕좌왕하는데 옆에서 어떤 남자가 808-233-3333에 전화 해보라고 얘기해줬다. 그 남자는 가족과 하와이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화로 낯선곳의 위치를 설명하는게 쉽진 않았지만 택시회사는 10분만에 미니밴을 보내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택시기사에게 팁까지 줬는데 UberXL 예상요금보다 낮았다.

내가 전화했던 곳은 하와이 로컬 택시회사 Charley's Taxi였음. 예약앱이 있어서 하와이 머무는 동안 앱에서 예약, 지정 시간 픽업, 예상요금 계산, 예약된 택시 모니터링 기능으로 Uber가 필요없게 되었다.

택시 기사들과 우버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원래 택시기사 자격증을 따려면 꼬박 두달은 하와이 돌아다니면서 길 익혀서 시험을 봐야하는데, 우버는 심지어 하와이 주민도 아닌 사람들이 운전한단다. 이런 사람들이 보험도 없이 운전을 하기때문에 사고가 나면 승객이 덤터기를 쓴단다.

Charley's Taxi는 택시마다 택시회사 컨트롤 센터와 통신하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잠깐 곁눈질로 본 바로는 경로탐색, 요금계산 등의 기능도 탐재되어 있었다. 전산화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손님들은 앱 또는 전화로 컨트롤 센터와 이야기하고 컨트롤 센터는 소속 택시들을 관리하는 구조.

컴퓨터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택시 기사들의 경험과 "비효율적" 중복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 많았다. 단 1분이 소중할때 컴퓨터 지도에 나와있지 않는 경험적 교통정보로 시간을 단축한다든지, 평균 10분정도 걸리는 전화방식의 신용카드결제대신 기사의 스마트폰으로 바로 결제를 하면서 망가질뻔한 우리 가족 스케쥴을 구해주기도 했다.

절실하게 느낀게 실세계는 최적경로탐색 이상으로 고려해야할 별별 변수가 많다는 것. 결정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가장 복잡한 변수다.

정리하면, 내가 가장 필요할때 "공유경제" 서비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난처할때 그 책임을 나한테 떠맡기고 모른채 했다. 그래서 "공유경제" 나빠가 아니라, 공유 경제가 전통경제에서 배워야할 것이 아직 많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익숙해서 몰랐는데 이전 시대의 혁신을 세월을 거치며 나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맞춰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전화가 혁신이었고 오랜시간 개선을 해온 기술이었던것. 808-233-3333이라는 짧은 번호가 충분히 많은 가입자들에게 번호가 주어지면서도 누구라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였던 것을 고생을 해보고야 알게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엔 어렵지만, 공유경제는 전통경제에서 배워야할게 많고, 위태해 보였던 전통경제는 지속적으로 개선만한다면 미래에도 살아남을수 있다고 느꼈다. 전통경제 너 생각보다 단단한 애구나. 그동안 인터넷 좀 한다고 무시해서 미안.

2016년 4월 1일 금요일

미국 테크 기업에서의 나이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기준으로) 직원 채용시 나이로 차별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레쥬메에 나이를 명시하지도 않고. 우리 회사에서도 면접이나 채용심사시에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일상대화에서조차 조심하도록 훈련을 시킨다.

사실 회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났을때나 아주 가끔 돌려선 물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나이로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게 된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편하게 지내고. 회사에 5-60대의 개발자들도 꽤 있고 평소에는 나이를 감지하지 못할정도록 격의없이 지낸다.

반대로 매니저가 나보다 어린 경우도 많다. 알고보면 20대인데 회사의 중역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그러다보니 부하직원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고민을 하거나 상사가 어리다고 기분나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그렇다고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그런게 없다면 회사에서 따로 훈련을 하거나 법을 만들 필요도 없을테니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신경써야할 일이 많아진다. 가족을 챙겨야하고 병치레도 잦아진다. 집중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 야근 등의 장시간 근무도 힘들다. 체력이 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과 동등한 경쟁은 힘들다.

나이값을 쳐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은 직원 평균 연령은 25-35세 사이라고 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밀려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경쟁이 심한 곳이 미국 테크기업이 아닐까 싶다.

2016년 3월 3일 목요일

제2차 기계 시대 - 변화의 시대

다음주면 이세돌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기의 바둑대결을 펼칩니다. 여러분은 누가 이길것 같나요? 인공지능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썼던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과연 인류는 발전하는 인공지능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기술발전은 인류역사에서 변곡점을 만들어왔다. 어떤 기술이 역사를 바꿔왔을까. 엘빈 토플러는 “제 3의 물결”이라는 책에서 농업혁명이 첫 번째 물결이었다면 산업혁명이 두 번째 물결이고 정보혁명이 세 번째 물결이라고 주장했다. 농업혁명은 사회를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꿈으로서 인류 문명이라는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물결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시킨 산업혁명이다. 마지막 물결은 1950년이후 정보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한편, MIT 교수 에릭 브린뇰슨앤드류 맥아피는 다른 관점에서 기술발전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증기기관 이후의 시대를 제1차 기계시대로 보고 컴퓨터 시대를 제2차 기계시대로 규정했다. 이들은 세계 인구변화와 사회발전추이를 주목했다. 시대별 세계 인구변화를 보면 오랜 기간 별 변화가 없다가 최근 천년동안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부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그림 1. 인구변화율 
저작권: 공개 도메인, 위키피디어(http://en.wikipedia.org/wiki/Sustainability)

인구만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 이안 모리스Ian Morris의 사회개발지수(Social Development Index)라는 것이 있다. 사회개발지수는 에너지 포획량, 도시 개발, 전쟁 능력, 정보 처리 능력을 기준으로 사회의 개발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다. 이안 모리스에 따르면 사회개발지수도 최근 몇백년간 갑작스럽게 증가했다.

브린뇰슨과 맥아피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사회발전의 이유로 1781년 증기기관의 발명을 든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 되었고 사회전반을 변화시켰다. 생산성, 즉 동일한 투입량에 대한 생산물의 비율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증기기관이 모든 산업에 뿌리내리는 데 몇 십년이 걸렸지만 그 이후 인류 문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의 노동과 동물의 힘만을 이용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기계의 힘을 빌어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증기기차와 증기배로 더 빨리 더 자주 더 멀리 여행하게 되었고, 공장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자리잡아 중산층을 낳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제1차 기계 시대의 시작이다.

제1차 기계시대, 저항, 번영

제1차 기계시대인 산업혁명을 살펴보자. 증기기관이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을 접수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저임금 단순노동자를 공장밖으로 몰아냈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기계를 도입하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만들어내면서 노동자들은 기계로 대치되었다. 노동자의 근육이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린것이다.

19세기초 영국 방직 공장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하고 공장을 불태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기계에게 죽음을. 기계는 우리 미래와 꿈을 짓밟아"라는 구호로 영국사회를 휩쓸었던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발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증기기관은 전동기와 내연기관으로 발전하면서 더욱 생산성을 높였다. 그렇지만 기술발전이 노동자들을 벼랑끝으로 몰고가리라는 염려와 달리, 노동자들은 신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제1차 기계시대가 진행되면서 부의 총량과 개인에게 돌아가는 소득이 모두 불어났고 실업률은 떨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특히 미국에서) 중산층이 다수로 등장하고 이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었다. 말하자면 기술 발전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영역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기술의 특징 - 디지털, 기하급수, 조합 혁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증기기관이 근력을 대체했다면 컴퓨터는 뇌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다. 증기기관이 인류역사의 변곡점을 만들면서 제1차 기계시대를 열었다면 이번에는 컴퓨터가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면서 제2차 기계시대를 연 것이다. 컴퓨터 기술이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디지털이다
컴퓨터 세상의 정보는 모두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물리적 세상에 두 다리를 내리고 사는 인간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 개념이다. 디지털 정보는 손에 만져지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정보는 거의 공짜로 복제가 가능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복제한 정보가 원본과 완벽하게 같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정보는 지구상에 어느 곳으로든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다. 무한 복제, 무(無)열화,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날로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이다. 음반산업을 예로 들자. 아날로그에서는 음반을 복사하여 낱장을 팔때마다 이익을 남겼다. 음반을 복제 생산하는 데에는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어릴적에 친구가 빌려준 카세트 테이프를 공테이프에 복사했던 기억이 난다. 복사본은 항상 원본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다. 복사본을 복사하면 품질이 더 떨어진다. 이런식으로 복사를 하다보면 듣지못할 수준이 된다. 그래서 매장에서 판매하는 원본을 구입하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되었나. 클릭 한번으로 음악을 완벽하게 복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기준으로 음악파일을 복제할때마다 비용을 청구하는 음반사가 있다면 장사가 될까.

기하급수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유명한 무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발견하여 1965년에 발표한 법칙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2년마다 두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무어는 이 법칙을 발표할 당시에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이 법칙이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로서는 대담한 미래 예측이었다.

그런데 무어의 예상과 달리, 무어의 법칙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직접회로의 성능이 2배로 증가하는 기간이 2년에서 18개월로 줄었고 지금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물리적 세상은 대부분 선형적으로 변한다. 공을 공중에 던지면 대충 어느 지점에 떨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크게 보면 공이 날아가는 속도는 선형적이기 때문이다(공의 속도는 변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머리로는 기하급수를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적응하기는 어렵다.

기하급수적 증가라는 것은 깊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일이다. 예를 들어, 1년에 두 배씩 성장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첫해에 1만큼 생산했다면 다음해에는 2를 생산하고 그리고 다음해에는 4를 생산할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1024만큼 생산을 하게 된다. 이해가 안되는가. 2를 10번 곱해보자. 1024다. 또, 10년이 더 지나면 1,048,576(~백만)이 되고 또 10년이 지나면 10억이 넘어간다. 이제 감이 오는가. 기하급수적 증가는 초기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되는 상태가 된다.

컴퓨터 세상의 거의 모든 산업이 기하급수적 그래프 위에 놓여있다. 불과 20년전 방 하나를 가득채웠던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는 이제 우리가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성능앞에 무릎을 꿇는다. 인터넷에 공개된 지식도 거의 매년 두배씩 증가한다.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는 데이터의 양도 매년 두배씩 증가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날로그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조합 혁신이다 
십 몇년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직장선배가 그랬다. 인터넷에 더 이상 혁신은 없다고. 나올 것은 이미 다 나왔다고. 어떤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인터넷에 새로 등장하는 서비스들은 이미 그전에 써먹었던 아이디어였다. 아이러브스쿨이 있었고 프리챌이 있었고 싸이월드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마이스페이스가 있었고 페이스북이 있었으며 트위터가 있었다. 이미 써먹은 아이디어를 계속 우려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혁신의 기본 성질이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든 것 말이다.

2007년 처음 발매된 아이폰은 거의 15년전에 개발된 애플의 뉴턴이라는 PDA를 떠올리게 한다. 뉴턴은 실패하고 사라졌지만 PDA를 시장에 소개한 최초의 제품이었고 PDA시장의 다음 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 포켓 PC로 이어졌다. 하지만 포켓 PC도 대중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PDA와 휴대전화를 조합하여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PDA나 휴대전화나 이미 있는 기술이지만 이것을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것이다.

다른 기술들은 어떤가. 손목 시계는 천년이 넘은 기술이다. 이것을 컴퓨터와 조합하여 스마트 시계라는 혁신을 만들었다. 자동차가 컴퓨터와 결합하여 자율주행 자동차로 거듭났다. 안경은 어떤가. 오래된 안경 기술이 컴퓨터와 결합하여 구글 글래스가 되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그랬던가. 새 것은 없을지 모르나 새로운 조합은 항상 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경제 성장은 사람들이 자원을 가지고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방식으로 다시 짜맞출때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제2차 기계시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백만번도 더 써먹었던 기술들을 새롭게 조합하면서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 연결된 세상 

우리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인류가 경험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일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의 출현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살펴보자.

인공지능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컴퓨팅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장족의 발전을 하면서 특정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기 시작했다.

1997년 IBM에서 개발한 딥블루Deep Blue 슈퍼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과 맞붙었다. 카스파로프는 역대 최고의 체스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경기는 딥블루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인간은 체스 경기에서만큼은 컴퓨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컴퓨터 성능은 갈수록 좋아져서 예전 같으면 방 안을 가득채우고 있을 슈퍼컴퓨터를 이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참고로, 삼성 갤럭시 S5 스마트폰에 내장된 그래픽 처리기는 딥블루 성능의 몇십배를 자랑한다.

제퍼디!Jeopardy!라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퀴즈쇼가 있다. 제퍼디! 퀴즈쇼 역사상 최강의 지식인은 무려 74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던 켄 제닝스Ken Jennings다. 제닝스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11년동안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제닝스에게 2011년 2월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 도전장을 낸다. 정확히는 두 명의 역대 인간 챔피언에게 도전했다.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왓슨의 완승이었다.

제퍼디!는 간단한 퀴즈쇼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반어법, 중의법, 수수께끼, 농담, 미묘한 어감 등을 이해해야 하는 퀴즈쇼다. 단순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운명같은 일이지만 제닝스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컴퓨터가 소리를 듣고 언어를 이해하고 다시 사람의 언어로 반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퀴즈쇼에서 왓슨을 이긴다고 확신했단다. 컴퓨터 따위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날의 퀴즈쇼를 마치고 자신이 골동품처럼 느껴졌다고(“I felt obsolete.”) 고백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는 컴퓨터 전문가들의 예상마저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왓슨은 이제 분야를 바꿔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일에 종사하고 있단다. 왓슨외에도 인공지능과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한때 인간의 두뇌로만 가능했다고 여겨졌던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야구경기를 보고 스포츠 기사를 작성해주고, 회계사를 대신하여 연말 정산을 하고, 심지어 자동차 운전까지 한다.

그 다음은, 일반지능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분야에만 특화된 인공지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인간처럼 분야에 관계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개념을 정립하여 실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진짜 지능이다. 딥마인드DeepMind와 같은 회사들이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일반 인공지능 개발에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추세로 보면 이 세대가 지나기전에 일반 인공지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세대가 경험할 또 하나는 전 인류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의하면 2014년 말에는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24억명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전세계 인구의 40%에 달하는 수치이다. 지금 인터넷 지도자들의 관심은 아직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60%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10억명의 인터넷 사용자the next billion Internet users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다음 10억명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주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주로 모바일 사용자를 중심으로 인터넷 사용자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세계가 연결되고 일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상향을 기대한다면 사람들은 노동에서 해방되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머슴이 하나에서 열까지 거들며 인간 주인은 여가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묵시록의 세상을 예상한다면 어느날 각성한 스카이넷이 조종하는 로봇군단이 핵전쟁을 일으키고 인간들은 멸종의 위기를 맞거나 컴퓨터가 만든 가상공간인 매트릭스안에 살면서 생체배터리로 전락할 것이다. 실제는 양 극단의 중간 지점쯤에 있을텐데 이상향이든 로봇제국이든 지금으로서는 조금 먼 미래다. 우리 세대에 나타날 기술이라면서 무슨 먼 미래냐고? 사실은 우리는 지금 이미 미래에 살고 있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류가 보게 될 현상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걱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걱정해야한다.

기계와 경쟁하는 인간, 소득불평등, 부의 집중 

제1차 기계시대의 기술혁신은 생산성을 높여 부의 총량을 키웠다. 총량뿐 아니라 개인의 소득도 꾸준히 늘렸다. 증기기관 등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비교적 빠르게 새로운 산업으로 정착했다.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도로에서 몰아내면서 마부의 일자리를 없앴지만 운전과 도로공사라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었다. 기술은 자본과 전문기술에 편향적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년간 사회의 허리로 중산층이 등장했고 소득이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었다고 본다.

제2차 기계시대도 부의 총량을 키우고 있다. 전보다 더 빠르게. 이번에는 컴퓨터가 지식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제1차 기계시대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GDP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반해 실제 가계 소득은 90년대 후반부터 갈수록 줄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전체 파이는 커졌는데 개인에게 돌아가는 파이조각의 크기는 줄었다는게 무슨 뜻인가.

그림 3. 실질 GDP 및 실질 가계 소득 중앙값 변화.
파란선은 1993년 기준 실질 GDP 증가 추이, 붉은선은 1993년 기준 실질 가계 소득 중앙값 증가 추이. 시간이 지날수록 GDP와 가계 소득이 벌어지고 있음.

부의 총량은 불었지만 늘어난 부는 극소수의 상위권 소득자가 가져갈 뿐만 아니라 통계적으로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머지 계층의 그나마 있던 소득까지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이루던 블루 칼라,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이 로봇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경쟁하면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로봇 등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자본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의 디지털 엘리트 그리고 국경이 없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성공하는 극소수의 혁신가들에게 부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모바일 사진 공유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팔렸을 때 직원이라고는 고작 15명 정도였다고 한다. 창업한지 불과 2년이 안된 회사였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기 몇 달 전에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20년 넘게 사진과 카메라 시장을 이끌었던 코닥이 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전성기때는 사진 혁신의 아이콘으로 13만 5천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회사가 무너진 것이다.

코닥이 호령하던 시대에 찍었던 사진의 양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히는 사진의 양에 비교할 수가 없다. 19세기 인류가 찍었던 사진의 총합보다 오늘 매 2분마다 찍는 사진이 더 많다. 페이스북에만 하루 3억장의 사진이 올라간다고 한다. 불과 15명의 혁신가들이 13만 5천명이 받들던 세상보다 몇 천배나 큰 우주를 창조한 것이다.  코닥과 인스타그램의 예는 디지털 혁신이 바꾸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제1차 기계시대에도 기술혁신이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냈었다. 하지만 농장과 공장에서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산업으로 재배치되었다. 제2차 기계시대에도 디지털 기술이 옛 일터를 없애면서 새 일터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기술발전의 속도를 사회변화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매년 거의 두배씩 성장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 법, 사회변화는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얘기다. 기술산업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혁신이 일어나는 데 정부나 사회도 이런 혁신이 가능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일반 인공지능이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인류는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사형선고는 내려졌고 형장에 붙들려 갈 순간을 기다린다는 얘긴가. 인간은 골동품이 되고 말것인가.

체스 얘기로 돌아가보자. 딥블루 사건 이후 프리스타일 체스라는 종목이 생겼다. 체스 경기에서 선수가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컴퓨터와 사람이 짝이 되는 것이다.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프리스타일 경기의 우승자는 체스 그랜드마스터도 아니고 최고성능의 컴퓨터도 아니었다. 더 주목할 것은 최고의 체스 선수와 최강의 컴퓨터 조합이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프리스타일에서 우승하는 팀은 사람과 컴퓨터가 협력하여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팀이었다. 이런팀에서 사람은 주로 전체적인 전략을 짜고 컴퓨터는 정확한 전술적 계산을 맡는다고 한다.

프리스타일 체스는 제2차 기계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인간은 기계와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내리막길로 들어설 것이다. 반대로 기계를 이용하면 오르막길이 수월해진다. 기계의 힘을 빌어, 기계와 함께, 기계와 협력하여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기계의 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이냐다. 사회는 맹렬히 달려가는 기술에 두려움을 느끼고,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새 시대에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하고, 교육 시스템은 산업혁명 시대의 틀에 묶여있고, 정부는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치인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인디언 격언에 “중요한 결정을 할때는 7세대 이후의 후손까지 생각하고 하라”는 말이 있다. 7세대면 한 150년 정도를 내다보고 고민을 하라는 얘기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결정이 과거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우리 아들 딸과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팀 오라일리Tim O’Reilly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
“우리는 미래를 담보로 과거를 구할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지켜야 합니다.”
"Policy should protect the future from the past, not the past from the future."

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단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특수 교육

우리집 막내 아이는 왼쪽 귀가 기형으로 태어났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기형인 귀 때문에 태어나서 바로 뇌 검사를 받아야 했다. 태아 시절 귀가 발달할 때 문제가 있었다는데 이건 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심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검사를 권하는 의사 선생님께 설령 기형아임을 안다해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하지않고 낳을 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낳은 아이인데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해야한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막내답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귀여웠다. 그렇지만 우리 막내아이는 3살이 훌쩍 넘도록 말을 잘 못했다. 막내가 한살때 미국에 와서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혼란스러운가보다라고 생각하기에는 어휘의 양이 적고 발음이 많이 어눌했다. 자기가 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짜증내는 경우도 많았고 프리스쿨preschool에서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못해서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가벼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 기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프리스쿨 담임 선생님도 소아과 병원의 선생님도 언어 치료speech therapy를 받을 것을 권했다. 알아보니 산타클라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쿠퍼티노시는 산타클라라 카운티 소속)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SELPA(Special Education Local Plan Area)라는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SELPA는 출생시부터 22세 사이의 장애아를 위한 무료 프로그램이다. 산타클라라 SELPA담당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후 교육부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고 절차를 밟아서 그해 9월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언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Date:  Jun 4th, 2012
To:  Michele OOOO
SELPA Director
Santa Clara County Office of Education

From:  Dong-Hwi Lee
OOOO OO Drive, #OO, San Jose 95129
(408) OOO-OOOO

RE: Speech delay
Dear SELPA director,

I’m writing to you because I have a concern with my 4-year old son’s speech delay.
His pediatrician and preschool teacher recommended IEP program offered by school district, so here I am requesting an assessment for OOO Lee’s language development.
You can reach me at OO@gmail.com or (408) OOO-OOOO (cell).

Thank you,

Dong-Hwi Lee
(Father of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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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치료 선생님은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분이었다. 막내를 직접 테스트하고 장기간 면담을 하면서 아이의 언어 수준이 표준 언어 발달단계로 보면 두 살 정도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짚어주었다.

그리고 교육과정과 부모가 유의할 사항에 대해서 서류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다른 주로 이사를 가더라도 지금 넘기는 서류만 들고가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무료 특수 교육을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다, 이 아이에 대한 평가 결과와 특수교육 여부는 모두 개인정보 보호를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경우에도 해당 학교나 담임교사에게도 아이의 특수한 상태에 대해서는 비밀로 지켜지고, 교육부에서 특수교육 교사를 따로 제공한다고 알려주었다. 또, 필요한 경우 아이와 부모에게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무료 식사도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특수교육 과정 신청절차에서 그 누구도 우리에게 미국 체류 신분이나 우리 가족의 소득 상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중심이었고, 이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몸으로 체험했다.

미국은 모든 게 돈으로 움직인다. 캘리포니아 학생 10명당 1명꼴로 특수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캘리포니아는 20%에 가까운 교육예산이 특수교육에 쓰인다. (우리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을 당시를 기준으로)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지가 있다는 얘기다.

막내는 1년 동안 꾸준히 교육을 받았다. 아이의 특수 교육에는 부모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매주 숙제가 나오면 부모가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해야 한다. 그 주간의 주제에 대해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까지도 편지의 형태로 아이손에 딸려온다.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었다. 나도 부모로서 상당한 정성을 쏟아야 했다.

1년 후 막내는 다시 언어 능력 테스트를 보았고 언어 능력이 또래 아이들 표준을 능가하면서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졸업할 수 있었다. 막내는 1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고 프리스쿨과 유치원kindergarten에서 인기있는 학생이 되었다. 그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졌다. 이제는 너무 말이 많아서 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막내는 책에 빠져서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엄마가 스트레스트를 받는 정도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면서 쿠퍼티노 학군 교육감이 언어능력 성취도가 높은 아이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부모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상을 받은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상장을 한번씩 쳐다보며 미소짓곤 한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 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평균적인 미국 학생의 학업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진다. 그런데도 나는 미국 교육에서 희망을 본다. 장애가 있어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교육정신에서(적어도 취지면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나는 희망을 보았다. 장애가 있건 없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불법체류자건 시민권자이건, 부모가 부자이건 가난하건 모든 아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나는 미국의 특수교육과정을 경험하면서, 공교육의 목적은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공립학교는 잘 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쳐지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평범한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가망이 전혀없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미국이 이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2016년 2월 11일 목요일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지구 문명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미래는 어떤 모양일까. 미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토대로 방향성을 분석하여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미래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낙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처럼 로봇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될것인가.

문명의 발전 단계 

구소련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가 제안한 카르다쇼프 척도라는 것이 있다. 우주 문명의 발전 단계를 문명의 에너지 사용량을 토대로 분류한 것이다. I, II, III 유형의 3단계로 구분한다. 1 단계는 행성에 내리쬐는 별 에너지, 우리로 치면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완전히 사용하는 단계다. 약 10에서 100페타와트 정도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이 정도 문명은 날씨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행성 전체를 지배한다.

2단계는 행성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이젠 항성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약 400요타와트(4 ×10^26 와트)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다른 별의 핵융합 반응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만들수 있는 문명이다.

3단계는 인접한 항성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은하내 1조개에 이르는 항성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이다. 4 ×10^37와트 정도이다. 수치가 너무 커서 단위를 구분하는 명칭이 없다. 대략 1 요타와트의 40조배 정도로 말그대로 천문학적 단위다. 인류가 3단계 문명에 이르면 우주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존재가 된다고 할까. 이론에만 존재하는 문명이지만 아마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어지고 신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카르다쇼프 척도에 의하면 현재 인류문명의 1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상태다. 단계 0이라고 할까. 좀 더 세밀하게 구분하면 에너지 소비량 기준으로 0.7단계 정도라고 한다. 인류는 우주의 기준으로 볼때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문명이라는 얘기다. 과연 앞으로 100년 이내에 1단계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너무 먼 미래라 별 감흥이 없다.

좀 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있을까?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

미래학 분야에서 존경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사람이 있다. 2045년이 되면 인간은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며 그 때까지 살기위해 비타민을 매일 복용한단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등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을 수 없는 특이점이 곧 도래한단다. 특이점을 지난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대학도 설립했다.

얼핏 들으면 무한동력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미치광이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세계 최초로 스캐너, 광학문자인식기OCR, 전자악기인 신디사이저를 개발했고 현재는 구글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진행중이다. 바로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미국 PBS방송사가 역대 미국 최고의 발명가 16인으로 뽑았고,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기술분야 최고영예인 미국 기술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레이 커즈와일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술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장이 기술분야, 특히 컴퓨터 분야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1900년초부터 현재까지의 컴퓨터 성능의 변화를 주목했다. 일초에 1,000불(100만원)짜리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는 계산량을 연도별로 조사해보면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 성능향상의 변화가 커지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기하급수적 증가라고 부른다. 기하급수적 증가의 특징은 어느 지점을 지나면 증가의 범위가 너무 커져서, 그래프로 그릴 경우 수직으로 지붕을 뚫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특이점이라는 것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점을 말한다.

커즈와일은 2029년이 되면 인간 뇌는 완전히 분석이 끝났고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2045년이 되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때가 되면 나노봇이 인간의 뇌에 들어가서 인터넷과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생각은 거의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고생할 필요 없이 나노봇이 들어있는 알약을 복용하면 나노봇들이 뇌를 자극하여 순식간에 언어를 습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컴퓨터 성능. 머지않아 인간의 두뇌를 능가한다.
저작권: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커즈와일 테크놀로지Kurzweil Technologies, Inc.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는가? 컴퓨터, 나노공학, 뇌공학의 발전속도를 보면 아예 허황된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최첨단 기술회사에서 일하는 나도 깜짝 놀라는 기술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노라면 털끝이 설 때가 있다.

그럼 미래는 터미네이터 영화에서처럼 각성한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로봇 군대의 공격으로 인류는 멸종직전으로 가게될 것인가? 대체로 사람들이 신기술을 접하고 떠올리는 것들이 이런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분야의 신기술 말이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기술개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일부 종교인들은 종말을 얘기한다. 뭐,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미래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진행형이다.

실리콘밸리의 그늘 - 소득 불평등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구글 직원들은 평소처럼 출근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주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원이 아닌 몇 사람들이 버스를 에워쌌다. 시위대였다. 공공 시설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었다. 버스는 한참을 붙들려 있다 풀려났다. 이 날 시위는 미전역에 화제가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번의 시위가 이어졌다.

몇 일후 근처 오클랜드시에서는 구글 직원들을 태운 버스에 벽돌이 날아들었다. 창문이 깨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구글 뿐만 아니라 애플 등 기술기업의 직원을 출퇴근 시키는 버스들이 연쇄적으로 봉변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의 집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감시, 통제, 자동화로 부도덕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구글 버스 시위대의 구호는 이렇다. 구글 등의 사기업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공공 버스 정류소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셔틀버스가 잠깐씩 버스 정류소에서 사람들을 태우는 것이 돌을 던지며 시위까지 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버스정류소 시위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의 수면아래에 소득 불균형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글 등의 기술 기업들이 정류소 이용료를 샌프란시스코시에 납부하는 것으로 버스 정류소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지는 곳

미국을 이끌어 가는 도시 4개를 뽑으라고 하면 금융의 뉴욕, 정치의 워싱턴, 문화의 LA, 그리고 기술의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다[1]. 실리콘밸리는 행정구역상의 도시는 아니지만, 개념상 큰 도시로 간주하자. 실리콘밸리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는 특별한 곳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종교도 관계없이 오직 아이디어와 실력만으로 회사를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

꼭 회사를 창업해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내에서 엔지니어에게 가장 많은 몸값을 제시한다. 아마도 전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선수 몸값이 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률은 어떤가.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인 산호세의 실업률은 5%대로 미국 최저 수준이다. 참고로, 미국 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는 실업률 5%를 “완전고용”이라고 본다. 실업률, 평균소득[2] 등으로 보면 실리콘밸리는 희망의 땅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비싼 주거비, 물가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일까? 월세다.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집주인이 아니면 월세 세입자다. 음식과 함께 집은 생존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 주민들은 집세로 얼마나 지출하고 있을까. 부동산 업체 리얼팩츠RealFacts에 따르면 산타클라라 카운티(실리콘밸리의 핵심 지역)의 2014년 평균 월세는 우리돈으로 2백3십만원 정도란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매월 2백만원 이상이 집세로 나가니까.  1년이면 2천 7백만원이 넘는 액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세가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평균 월세는 전년에 비해 9%가 늘었다.

집 값이 오르면 물가도 오르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지역은 교통비, 의료비, 식료품비, 공과금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비가 높다.

소득 하위 계층의 증가 

실리콘밸리에 흘러오는 막대한 부는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듯 하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을 떠받쳐온 중산층이 실리콘밸리에서 힘을 잃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인구가 62%에서 55%로 줄었다. 그리고 시간당 16불(17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무려 31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8시간씩 일주일에 5일을 꼬박일해도 한 달에 2600불(280만원)을 못 번다는 얘기다. 월세만 내기도 빠듯한 액수다.

시간당 10불(최저임금은 9불이다)을 받는 계약직 노동자는 초과근무를 해도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맥도날드 점원 뿐만 아니라 부자 기업을 위해 일하는 셔틀 운전사, 경비원, 요리사들도 계약직 노동자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정할수도 없고 일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일정이 짜이기 때문에 받는 임금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 일부 노동자들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다쳐도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놔둔채 회사의 일방적인 스케쥴에 맞춰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가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소득 불균형Income Inequality이라고 부르는 데 소득 불균형은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다. 소득 불균형은 미국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미국 의회 예산처 보고서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30년간 상위 1%의 소득은 275% 증가한 반면 하위 20%는 18%밖에 늘지 않았다고 한다.

짙어지는 그늘 

실리콘밸리는 소득불균형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에서 뽑혀온 기술 엘리트들은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임금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무료 점심, 고급 의료 보험, 무료 셔틀, 유급 병가, 충분한 출산 휴가 등 더 많은 것을 누린다. 거대 기술 기업의 직원들은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리고 더 넓은 선택권과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글의 주요 의제인 주택문제로 돌아가보자. 전세계에서 모여든 고소득 계층이 목돈이 생기면 하는 일이 주택 구입이다. 주택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주택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보니 주택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도 증가했다. 집을 사려고 돌아다녀보면 막대한 현금을 들고 오는 중국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호가listing price보다 20%정도 웃돈을 주고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이전부터 살던 토박이들은 갈수록 집을 산다는 건 꿈꾸지 못하고 월세로 만족해야 하는데 월세마저 자고 일어나면 천장을 뚫고 있으니 절망스럽지 않을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술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난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로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대의에 나를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첨단 기술과 담이 없어진 세계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하고 중산층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도 난 여전히 기술과 열린 세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고 싶은데 가슴 한 구석에선 죄책감이 자라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22번 호텔[3] 

자정이 지난 금요일 새벽 어느 버스 정류장, 산호세에서 출발하여 팔로알토로 향하는 22번 버스에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모두들 노숙자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운행하는 22번 버스를 사람들은 22번 호텔Hotel 22라고 부른다. 집 없는 이들이 2달러를 내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이다. 

버스 뒤편의 구석진 곳에 아빠와 딸이 자리를 잡고 있다. 딸은 긴 좌석에 가방을 배게삼아 잠을 자고 아빠는 그 뒷좌석에서 앉은채로 잠을 청하고 있다. 아빠는 실직 상태고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들어가고 싶지만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있다. 아빠와 딸은 밤새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5학년짜리 딸은 아침이 되면 스쿨버스로 갈아타고 학교에 갈 것이다.

아빠와 딸은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어떤 꿈을 꿀까.

[1] 매트 커츠의 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네 개는 어디일까요?" 참고. https://www.mattcutts.com/blog/four-city-theory/
[2] 본문에서 소개한 실업률, 평균소득 등의 통계 자료는 각각 다른 보고서를 참고로 했다. 또한, 경우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등의 개별 도시별 통계를 인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각 통계치가 다른 기준과 조건을 갖고 있음을 미리 얘기해 둔다. 다만, 인용한 통계자료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글의 논지와도 맞다고 생각한다.
[3] 22번 호텔에 대한 산호세 머큐리 신문의 기사. http://www.mercurynews.com/bay-area-news/ci_24429126/homeless-turn-overnight-bus-route-into-hotel-22

2016년 2월 4일 목요일

양날의 기술 - 편리한 기술이 감시의 도구로

이 글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2013년 6월 6일, 가디언The Guardian과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에 충격적인 기사가 올라왔다. 미국 국가안보국 NSA가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Verizon으로부터 매일 수백만건의 통화기록을 수집했다는 기사였다. 국외의 적으로부터 미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NSA가 자국 국민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통화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통째로 넘겨받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언제든 과거의 통화 기록을 꺼내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만으로도 경천동지할만한 일인데 이후로 밝혀질 일들에 비하면 이건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었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20대의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의 시스템관리자로 일하면서 미국 정부의 상상을 뛰어넘는 통신 감청 및 수집 행위를 알게되었고 대략 170만건의 관련자료를 빼내 세상에 폭로했다. 2013년 6월 6일 이후, 아마도 인류역사가 계속되는 한 역사책에 영원히 남을 인물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장벽없는 기술의 발전이 부패한 위정자와 행정권력에 의해 무시무시한 감시와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에드워드 스노든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프리즘PRISM

에드워드 스노든이 언론에 제공한 자료들이 속속 세상에 나오면서 전화뿐만 아니라 이메일, 영상통화, VoIP(인터넷 전화), 사진, 동영상, 파일 전송, 소셜 네트웍 활동 등 거의 모든 인터넷 활동을 NSA가 감청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집 대상은 미국 국민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감청의 범위는 가히 전세계라고 할 만큼 광범위했다. 프리즘 프로젝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수집하는 데이터가 소위 메타데이터로 불리는 누가 언제 누구한테 통신을 주고 받는지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통신 내용 자체까지 포함한다는 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세계적 인터넷 기업들이 미국의 FISA, 즉 해외 정보 감시법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에 의해서 법원의 명령이 있을 경우 사용자의 정보를 국가 기관에 제출하도록 강제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인터넷 기업들은 사용자의 신뢰를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사용자의 신뢰와 법의 준수 사이에서 기업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미국에 근거를 두는 이들 기업들이 어찌되었든 법이 명령하는 것을 지키지 않을 방법은 없다. 야후는 NSA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여 재판장까지 갔지만 패소하고 법에 의해 사용자 정보를 제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기업들은 법에 의해 NSA와 협력한다는 것을 밝힐 수도 없고 소송을 해도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더우기 실재하는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미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설령 인터넷 기업들이 정보의 제공을 거부하였어도 NSA는 기업 데이터센터를 해킹하여 원하는 자료를 빼내갔다고 한다. 일명 MUSCULAR 프로젝트였다. NSA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하나가 주목을 받았는데 구글의 망 구성도였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이 핵심이었다. 구글이 암호화를 하는 부분이 구글 내부 데이터센터와 외부 인터넷을 연결하는 GFE라는 부분이고 내부 데이터센터간 통신에는 암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GFE를 설명하는 글, "SSL added and removed here! :-)"의 끝에 웃는 표정의 스마일리Smiley 아이콘이 그려져 있었다. 이걸 본 구글 엔지니어들은 분노했다. 중국 정부의 조직적인 해킹 공격에 대항하여 중국의 민권운동가를 지켜내며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구글 데이터센터의 문을 열라고 협박해도 굴하지 않겠다는 구글 엔지니어의 자부심이 NSA의 웃는 아이콘 하나에 무너졌다. 그림속 이모티콘 ;-)이 이렇게 뼈아플수 있을까.

B2. NSA MUSCULAR 프로젝트 슬라이드 중 구글의 망 구성도 

구글 엔지니어들은 더욱 철저하게 암호화를 했고 데이터센터간의 통신뿐만 아니라 컴퓨터간에 주고 받는 데이터를 암호화했다. 그리고 이메일의 종단간end-to-end 통신을 암호화하는 소프트웨어도 오픈소스화하였다. 그리고 소스 코드에 "SSL-added-and-removed-here-;-)"라는 메시지가 보란듯이 들어있었다. 암호화(SSL)는 이제 구글의 GFE가 아닌 NSA가 중간에 가로채긴 힘든 이 부분에서 이루어진다는 조소였다.


B3. 미국 잡지 PCWorld가 발견한 구글 소스 코드내 문장

인터넷 감청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감시 체계 

미국 정부가 감청을 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은 법에 의해 이미 70년대부터 국외 통신에 대한 감청을 해왔다. 또한 자국 국민을 감청한다는 사실도 세계적으로 보면 새롭지 않다. 가깝게는 우리나라만 해도 민간인 사찰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종종 기사화되곤 하지 않는가.

주목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감청의 범위와 대상의 규모가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보내는 데이터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로가 아니라 전송 비용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터넷 통신망에 있어서 미국은 로마제국이다. 전세계 통신망이 미국으로 연결되어 있고 상당량의 세계 인터넷 데이터가 미국을 통과하거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앉아서 통신망에 귀를 대고 있으면 전세계 통신을 감청할 수준이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움직이는 지 상상해 보면 전세계인이 부처님 손아귀에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속고 속이는 각국 정부 

프리즘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즘 프로젝트에 공조하는 나라에 대하여도 미국이 따로 감청을 했다는 점이다. 유출된 NSA 자료에 의하면 2013년 3월 한달 동안 독일내 통신 자료만 5억건이 수집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수상을 미국 정보국이 10년 이상 감청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미국 대사를 소환하여 항의하였고 메르켈 수상이 오바마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평소 미국은 중국발 해킹 공격을 강하게 비판해왔는데 프리즘을 비롯한 광범위한 감청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뭐 묻은 개가 뭐를 욕하는 격이 되었다.

기술의 한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에게 질서와 안전을 부르짖는 권력자들의 생얼을 보여주었고 자신을 둘러싼 기술 환경이 권력자에 의해서 어떻게 악용되는지 보여주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기술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엔지니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전세계의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로 날아온다. 기술로 전세계를 연결하고 지구상 어디에서나 누구나 자유롭게 질좋은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더 좋은 기술을 만들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소스코드를 공개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유치하고 순진하지만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그 기술이 평범한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전세계를 자유롭게 연결한 인터넷을 엿듣고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공개한 기술을 가지고 사람들을 압제할 도구를 만들었다.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은 기술이 안보라는 깃발 아래, 법과 제도에 부딪힐 때 얼마나 연약한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법이 강제한다고 하여도,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라고 하여도, 사람들을 압제하는 기술을 만든 엔지니어들은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NSA가 저지른, 인류에 대한 범죄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아랍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은 페이스북 등 인터넷이 평범한 시민들을 깨우고 독재자를 몰아내는 시민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혁명 시작후 5년이 지난 현재 재스민 혁명은 실패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진정한 민주주의 도구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에드워드 스노든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인터넷과 기술 기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찾는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 한 구석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평선에 걸치는 붉은 태양을 보노라면 그렇게 좋을수 없었다. 수영장의 안전요원들은 혹시나 있을 사고에 대비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고마운 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소세지같은 길쭉한 것이 물에 떠올랐다. 똥이었다. 누군가 수영장에 똥을 싼 것이다. 수영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안전요원에게 이야기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충격이다. 오늘만 똥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수영장 물에 똥이 항상 섞여 있었단다. 그리고 안전요원들이 일부러 수영장 물에 똥을 싸왔다고 한다. 헉! 이제 이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놀러 올 것인가? 내일도 그 다음날도 안전요원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NSA가 해왔던 일들이 드러나면서 세상은 의심의 시대로 들어섰다. 미국 기업들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고 이것이 미국 산업에 영향을 주었다. 보잉으로부터 전투기를 구매하기로 했던 브라질은 NSA 사건 이후 구매계획을 취소하고 스웨덴의 Saab와 45억달러 전투기 구매계약을 했다. 이제 미국 IT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려면 전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NSA의 요청에 의해 자신들의 네트워크 장비에 백도어를 심은 시스코Cisco사는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인터넷 종주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세계 각국이 인터넷 관리의 힘을 지역 국가로 분산시키자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NSA는 단순히 미국 기업의 매출에 타격을 주고 미국의 기술 지도력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NSA는 세상을 불신의 시대로 떨어뜨렸고 기술의 밝은 미래를 작살냈다.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이 친구와 채팅을 하고 가족과 영상통화를 할때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든것이다.

기술, 국가, 인류

에드워드 스노든의 진짜 업적은 기술환경과 부패한 권력에 대해 눈 감고 있던 사람들을 깨운 것이다. 주인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집을 지키라고 키우던 개들이 찢고 까부르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주인이 자고 있으니 세상이 지들 것인양 난리를 피우다 주인의 침대에까지 뛰어올랐다. 놀라 잠이 깬 주인 앞에 개들이 멈칫한다. 난장판이 된 방안을 둘러본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주인의 고함 소리에 그제야 자신들의 위치를 깨닫는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주었던 그 사람이 주인이고 자신들이 주인의 것들을 망쳐놨다는 사실을 깨닫고 꼬리를 감추고 만다.

법도 정부도 국가도 모두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시민이 주인이다. 시민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주었던 권력이 기술을 가지고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누가 주인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주인이 잠에서 일어나 눈을 떠야 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시민을 깨우고 있다.


덧: 결론부의 개 비유는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분들께는 거북하게 들릴수 있습니다.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6년 1월 28일 목요일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턴에 대한 정보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턴에 관심있는 분들께.

이번에 팀에서 인턴을 채용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관심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시라고 올립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일텐데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올립니다. 인턴 채용은 각 나라별로 조금 다를수 있고, 아래의 내용은 구글 본사에 관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1. 대학 학부/대학원(석사, 박사) 재학 중인 학생
인턴을 하게 될 시점에 재학중이어야 합니다.  여름방학에 인턴을 하면 그 전 가을부터 지원을 하는데요, 인턴을 하게 되는 여름동안 재학중이어야 합니다. (휴학중이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될 것 같긴 한데.)

2. 한국에서 본사로 지원 가능합니다
외국에서 미국으로 지원해서 합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인턴은 회사에서 비자 프로세스 지원까지 해 줍니다.

3. 전화로 기술면접을 봅니다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지만 보통 두세번 정도 전화로 기술면접을 보고, 한번에 45분 정도 면접을 봅니다. 인턴도 일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로 기술 면접을 실시합니다.

4. 합격후에도 프로젝트를 찾는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면접을 잘 보고 합격을 한 후에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프로젝트(팀)을 찾는 건데요. 프로젝트를 찾지 못하면 합격을 했어도 인턴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이때 마치 TV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인턴을 호스트할 팀과 인턴 합격자간의 밀고당기기가 있습니다.

인턴 호스트 신청자들은 인턴 합격자 전체 리스트를 보고 관심을 표하고 프로젝트 매칭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합니다. 인터뷰 성적이 좋고 레쥬메가 좋은 인턴들은 인턴 호스트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매칭 인터뷰 신청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팀을 골라서 갈 수 있습니다. 합격자 중에서도 인기가 없어서 결국 호스트를 못 찾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인기 있고 정말 괜찮은 인턴들과 매칭 인터뷰를 할 때는 저도 등줄기에 땀이 날 정도로 우리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지 홍보를 합니다.

저는 호스트의 입장에서 수학과 구현을 잘 하는 인턴을 구했는데요, 긴 합격자 리스트에서 대여섯명 정도 매칭 인터뷰를 하고 정말 기대되는 인턴을 득템했습니다. ^^

5. 여름 인턴은 그 전 해의 가을부터 지원해야 합니다
겨울에 이미 합격된 인턴들의 프로젝트 매칭 인터뷰가 시작되고 3월이면 매칭 인터뷰도 끝납니다. 여름 인턴을 준비하신다면 1년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턴에 관심있는 분은 "슈퍼인턴을 만나다"도 참고하세요.

2016년 1월 14일 목요일

구글 인터뷰 팁


오래전에 구글+에 올렸던 글을 옮겨왔다.

구글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지원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적어본다. 이 글은 구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후배에게 얘기한다는 마음으로 적은 글이다. 누구에게나 적용하기 힘든 개인적인 경험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표현도 많이 있지만 그게 나의 솔직한 이야기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참고로 나는 구글에 입사하여 150회 정도의 엔지니어 후보자를 면접했고 채용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도전 - 구글 면접 자체로 배울 것이 있다

내가 구글에 입사하기 위해 도전할 때를 추억해보면 면접후의 나는 면접 보기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면접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혔고 그 한계 너머의 세상을 경험했고 컴퓨터 공학 문제를 푸는 방법에는 더 높은 단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세상을 향해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까.

내가 구글에 지원할 때 합격하리라는 믿음은 없었다. 지방국립대를 (정말로) 간신히 졸업하고 대기업 근처에도 가보지 못해 이력서에 눈에 띄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구글 R&D센터가 들어오기 전이라 면접을 영어로 볼텐데 그럴 실력도 없었다. 영어점수가 없어 대기업 근처에도 못 갔고. 오히려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도전을 했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어린 아이들 셋을 두고 구글에 면접을 보려고 회사에는 퇴사를 알렸다. 그러니 형편으로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구글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도전을 했고 레쥬메를 내고 합격통지를 받기까지 4개월동안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면접을 보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다 끝났어. 난 이제 떨어져도 아쉬운게 없어.” 정말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종일 긴장하고 면접을 치러서 어지러웠지만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구글에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떨어지더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다. 구글 면접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어떤 사람은 구글의 면접은 현대의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전화 인터뷰 팁 -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시간대로 고른다

일반적으로 본면접을 보기전에 전화로 기술 면접을 치른다. 전화상으로 45분 정도 기술 면접을 보는데 대면 면접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를 푼다. 전화를 들고 구글 닥스Google Docs에다가 코딩도 시킨다. 얼굴도 보지 않고 전화로 기술면접을 보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그리고 영어다. 따라서 전화 인터뷰 전에 준비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의 첫번째는 면접 시간이다. 면접시간을 조정하는 리쿠르터에게 자기가 원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자. 하루 중 컨디션이 최상이 되는 시간대 그리고 다른 일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대를 골라야 한다. 구글의 면접관과 채용담당자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을 수도 있어서 실수로 면접 시간이 면접 후보자에게는 새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바꿔줄 것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면접 과정은 후보자의 최상을 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 인터뷰 팁 - 준비를 하면 좋은 것들

전화는 스피커 폰 기능이 동작하는 지 확인하자. 헤드셋이 있으면 편하다. 적어도 1시간 동안은 방해받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면접 중에 전화가 끊기거나 누가 방해를 하면 곤란하니까.

연습장과 연필을 준비하자. 종종 종이에 계산을 하거나 메모를 할 일이 있다. 면접관의 이름을 메모하기도 한다. 가령 면접관이 처음 소개할 때 밝혔던 부서를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관련된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검색팀에 계시다고 했는데 요즘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가를 물어볼 수도 있다.

인터넷과 구글닥스가 잘 동작하는지 확인하자. 코딩을 구글 닥스에 시킨다. 인터넷 브라우저도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면접 시간이 되기 전에 리쿠르터가 구글 닥스 링크를 보내준다. 면접 시간에 면접관도 해당 구글 닥스 문서에서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

문제 유형과 요령

코딩, 알고리듬, 시스템 설계 등을 주로 물어본다. 박사 졸업자의 경우는 졸업 논문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대체로 실제로 현업에서 발생하는 내용을 토대로 물어본다.

코딩은 보통 15분에서 20분 사이에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들이 많다. 구글 면접 문제로 잘 알려진 atoi함수 구현이나 문자열 뒤집기 등의 문제는 쉬운편이다. 물론 이런 잘 알려진 문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쉬운 코딩 문제를 내지만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통과하지 못한다. 코딩은 누구나 하지만 제대로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인터넷도 없고 비주얼 스튜디오도 없이 칠판에 코드를 짜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평소에 칠판이나 종이에 연습을 많이 해두어야 한다.

코딩 문제가 나올때 바로 구현으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 먼저 요구사항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부러 중요한 사항을 빠뜨리고 문제를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입력 데이터의 타입이나 중요한 예외 케이스corner case등을 일부러 누락한다. 바로 구현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요구사항을 점검하고 간단하게라도 어떤 식으로 구현할지 설명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는 말고.

구현이 끝나면 반드시 검증을 하자. 요구사항 분석시 사용한 예제나 예외 케이스를 가지고 코드를 한줄 한줄 진행하면서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나 문법의 오류를 스스로 찾도록 한다. 평소에 엔지니어들은 코드의 작성보다는 버그를 수정하고 코드를 향상시키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따라서, 면접과정에서도 스스로 버그를 찾고 코드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리하면 (1) 요구사항 분석 -> (2) 구현 -> (3) 검증 및 향상의 3단계를 거치는 것이 좋겠다.

알고리듬은 주어진 컴퓨터공학 문제를 어떻게 풀지 물어본다. 주로 많은 데이터에서 주어진 값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을 물어본다. 처음에 간단하게 시작해서 데이터의 규모가 커진다거나 컴퓨터 시스템의 한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심화하기도 한다. 알고리듬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접근 방식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제의 조건에 따라 퀵 정렬보다 병합 정렬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때 왜 그런지 설명하는 것이 좋다. 입력 데이터가 메모리의 용량보다 커서 랜덤 액세스가 필요한 퀵 정렬이 비효율적이라든지 말이다. 계산 복잡도와 공간 복잡도를 공학적 표기법(대문자 O 표기법 등)으로 설명하는 것도 있지 말자. 알고리듬 문제에서 코딩 문제로 발전하기도 하니 미리 코딩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시스템 설계에서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설계해 보라고 하기도 하고 상상의 제품을 만들어 보라고도 한다. 구글에서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모두 병렬처리 또는 분산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분산 시스템에 대해서 공부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구글 검색의 성공을 뒷받침했던 구글 파일 시스템GFS과 맵리듀스MapReduce에 대한 논문을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구글 파일 시스템에 대한 논문:
http://research.google.com/archive/gfs.html

대규모 병렬 처리 프레임워크 맵리듀스에 대한 논문:
http://research.google.com/archive/mapreduce.html

면접관들의 문제 출제 유형

면접관들의 면접유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가능한 넓은 영역을 두드려서 후보자의 컴퓨터 공학 지식과 경험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진단 평가 유형과 좀 더 복잡한 공학 문제를 물어서 후보자의 지식과 경험을 깊이 평가하는 심화 평가 유형이다. 면접관들의 성향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시스템 관리자, 웹마스터 등은 진단 평가를 사용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심화 평가 유형을 주로 사용한다. 때로는 한 면접 세션에서 진단 평가와 심화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화 평가라면 한 세션에 보통 두 문제 정도를 푼다. 45분 면접의 시작시 소개와 종료직전의 자유질문 시간을 빼면 한 문제당 15분에서 20분 정도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자.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15분내에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이니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물론 어려운 문제는 한 세션에서 한 문제만 푸는 경우도 있다.  

단순 지식을 묻는 문제가 아닌데 3문제까지 왔다면 둘 중 하나다.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력을 가진 후보이거나 가망이 별로 없는 후보다. 나는 보통 처음에 쉬운 문제를 낸다. 몸풀기 문제인 것이다. 몸풀기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낸다.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경우 더 어려운 문제로 옮겨간다. 드문 실력자다. 개중에는 첫 번째 문제에서 헤매는 사람이 있다. 이때는 더 쉬운 문제를 내거나 분야를 바꿔서 문제를 낸다. 후보자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 가망이 별로 없다.

때로는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로 몰아치는 경우도 있다. 레쥬메를 읽을때 또는 면접 초기에 감이 오는 경우다. 이 친구 정말 실력자라는 느낌이 오면 어려운 문제를 내면서 후보자의 약점을 찾으려고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수준 높은 후보자를 그 수준에 맞는 잣대로 평가하려는 것도 있지만 면접관이 혹시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을 스스로 견제하기 위해서다.

문제 풀이 과정이 중요하다

기술 면접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실세계의 공학문제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실세계 시스템은 복잡하고 요구사항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상충점trade-off을 고민하는 것이 공학이다.

아폴로 착륙선의 다리를 설계할 때도 상충점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리를 세개로 하면 무게를 줄일 수 있지만 안전하지 않았고 다섯개로 하면 가장 안전하지만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에 다리를 네개로 정했다고 한다. 이걸 비공학도들에게 얘기하면 당연히 다리 네개가 제일 좋은 것 아니냐고 핀잔을 듣는다. 하지만 공학도들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제의 원리를 풀어내야 한다. 

컴퓨터공학도 마찬가지다. 혹 틀린 답을 도출할지라도 답이 나오는 과정에서 요구사항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었는지, 가능한 옵션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어떤 상충점을 고려했는지,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풀이 과정과 검증 방법을 아는 사람이 문제를 정말로 풀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문제풀이 과정이 정답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기술 면접에서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iteration과 대화interaction다

문제를 풀 때 쉬운 풀이 방법으로부터 차근차근 반복하면서 향상시키는 것이 좋다. 코드를 작성하는 경우라면 알고리듬은 비효율적이지만 구현하기 쉬운 방법으로 빨리 코드를 완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알고리듬을 썼더라도 코드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인정을 받기는 힘들다. 많은 후보자들이 최적의 구현방법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정작 코드를 완성하지 못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구현하는 것에는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은 실제로 코드를 쓸 때 드러난다. 따라서 우아하지(?) 않더라도 동작하는 코드를 작성하고 문제를 발견한 다음에 반복적으로 향상하는 것이 전략이다. 물론, 초절정 고수는 일필휘지로 단방에 최고의 코드를 써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면접관과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면접관을 동료라고 생각하고 문제풀이를 짝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으로 생각하자. 면접관의 질문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코드를 어떻게 작성할지 대강의 플로우flow를 얘기하자. 코드를 작성하면서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표현하면서 써내려 가는 것이 좋다. 때로 잘 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 면접관이 가이드를 해 줄 수도 있다.

통역관을 요청할 수 있다

영어에 정말 자신이 없으면 통역관을 요청할 수 있다. 보통은 엔지니어가 통역을 한다. 컴퓨터공학 용어나 기술 설명은 비엔지니어가 통역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참고로 나는 영어를 잘 못했지만 일부러 통역없이 면접을 봤다. 비엔지니어가 통역을 하리라고 생각했고(당시에는 실제로도 그랬다) 대면 면접에서 부족하더라도 중간에 끼는 사람 없이 정면으로 부딪히겠다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나는 이런 배포 때문에 득을 보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엔지니어는 영어 능력 테스트가 아니니 자신이 없으면 통역관을 요청하자.

면접관들이 잘 묻지 않는 질문

“앞으로 10년후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보세요.”나 “구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같은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후보자들은 열이면 열명 모두 알흠다운 답변을 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후보자의 진면목을 알 수도 없고 변별력도 없다는 뜻이다.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오면 그건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보자.

엔지니어 면접에서 미국에 주유소가 몇개 있느니 골프공의 홈은 몇개 있으니 같은 질문은 묻지 않는다. 이런 질문은 전문 용어(?)로 돈오 질문Aha questions이다. 번뜩하는 재치를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좋은 엔지니어인지를 드러내는 평가로 보기는 힘들다. 좋은 엔지니어는 오랜 시간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돈오보다는 점수의 질문이 좋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문의하자

구글의 채용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전세계에서 일주일에 수만명의 후보가 지원하기 때문에 간혹 채용절차의 중간에서 누락되거나 실수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원하는 사람은 리쿠르터 한 사람과 1:1로 연락한다고 생각하지만 리쿠르터는 엄청난 숫자의 후보자를 다룬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내가 추천했던 어떤 후보자는 처음 지원했을 때 쓰던 이메일 주소가 아닌 다른 이메일 주소로 리쿠르터에게 연락을 취했다가 응답을 받지 못하고 단단히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는 그의 이름과 내용으로 해당 리쿠르터가 충분히 응대를 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리쿠르터의 시스템은 이메일 주소를 기준으로 관리가 되었기 때문에 확인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건 드문 경우인데 이외에도 중간에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다.

궁금하거나 문제가 있을 때 무한정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물어보는 것은 흠이 아니다.   

면접관들이 싫어하는 말

@ 나를 뭘로 보고 코딩을 시키나요? 코딩에서 손 뗀지 오래되었어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지원하는 경력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로 코더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오래 해왔다면서. 이런 말이 엔지니어인 나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코딩을 하급 노동이나 잡일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책에는 어울리지 않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글쓰기를 잡일로 보고 연설가를 말하는 것을 잡일로 보고 육상선수가 달리기를 잡일로 볼까. 소프트웨어 제품을 움직이는 것은 소프트웨어 코드다. 기획도 중요하고 설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제대로된 코딩없이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일 뿐. 

@ 구글 제품들은 최고입니다.
고마운 얘기다. 그런데 면접관들은 구글 제품의 문제점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 구글이 나아가는 방향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앞 문장에서 논리라는 단어에 밑줄을 긋자.

가끔 면접관들이 혹시 구글 제품의 문제점에 대해서 묻는다면 지적할 내용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좋겠다. 

@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입니다.
차라리 그냥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학교 망신은 주지 않을테니까. 기술 면접에서 물어보는 내용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기본 소양이라고 본다. 배우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은 실제로 그럴지라도 가슴에만 담아두자.

@ 제가 인터뷰 잘 보았나요?
물어봐도 면접관들이 말해주기는 힘들다. 

땡큐 인사를 따로 보낼 필요는 없다

가끔 면접관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땡큐 인사를 보내기 위해서. 솔직히 나는 별로다. 나는 면접관으로서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할 수 있다. 이건 후보자에게는 생사여탈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다. 후보자에게 내 연락처를 준다는 것, 그리고 땡큐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객관적 결과에 혹시 영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달갑지 않다.

땡큐 메일은 가능한 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다른 후보자들과 공평하게 평가해야 하는 순간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소개는 짧게

자기소개에 에너지를 쏟지 말자. 면접관들은 후보자의 레쥬메를 읽고 들어온다. 후보자의 자기소개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진짜 궁금하면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본다. 3문장 정도로 요약하여 나는 현재 무슨일을 하고 주로 어떤 분야에서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면 된다. 자랑할 만한 것이 있으면 키워드와 숫자로 주의를 끌도록 한다. 예를 들어, 나는 1970년대에 데니스 리치와 함께 유닉스를 만든 켄 톰슨입니다. 팍. 끝.

마지막 팁

내가 구글에 지원했을 때 이런걸 알려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레쥬메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으니까. 막막하게 준비하던 그때의 답답함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이 글을 적었다.

나의 마지막 인터뷰 팁은, 팁은 팁일뿐 규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될수록 세상이 교과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오랜 시간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조언을 하지만 여러분이 부딪힐 세상은 내가 경험한 세상과는 다르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나는 자기소개는 짧게 하라고 조언했지만 내가 구글에 지원할 때는 자기소개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파워포인트의 품질이 맘에 들지 않아 생전 처음 맥북을 구입해서 애플 키노트 프로그램으로 자기소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친한 직장 동료에게 돈까스를 사며 식당에서 영어로 자기소개 프리젠테이션도 했다. 그러나 실제 면접에서는 자기소개를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한 면접관이 서울의 교통체증 때문에 면접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했다. 미리 내 레주메를 확인하지 못해 당황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인터뷰 시간에서 딱 5분만 주면 내 소개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 3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 프로젝트마다 무슨 프로젝트였으며 문제점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해결했는지 3단계로 적었다. 마지막에 진짜 최고의 프로젝트는 가족이라며 세 아이와 아내를 팔았다. 3+1. 팍. 끝.

5분의 자기소개가 내 입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구글에 입사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고 내 조언도 그저 조언일뿐 당신이 경험할 세상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배의 선장은 당신이다. (아... 오그라든다.)

면접관으로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 면접이 있다. 면접관을 한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후보자가 있다. 문제는 면접관이 내지만 후보자가 동료로서 문제풀이 여행을 함께 떠나는 면접이 있다. 나는 면접관으로서 이런 면접을 기다린다.

구글 인터뷰 팁은 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