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단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특수 교육

우리집 막내 아이는 왼쪽 귀가 기형으로 태어났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기형인 귀 때문에 태어나서 바로 뇌 검사를 받아야 했다. 태아 시절 귀가 발달할 때 문제가 있었다는데 이건 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심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검사를 권하는 의사 선생님께 설령 기형아임을 안다해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하지않고 낳을 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낳은 아이인데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해야한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막내답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귀여웠다. 그렇지만 우리 막내아이는 3살이 훌쩍 넘도록 말을 잘 못했다. 막내가 한살때 미국에 와서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혼란스러운가보다라고 생각하기에는 어휘의 양이 적고 발음이 많이 어눌했다. 자기가 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짜증내는 경우도 많았고 프리스쿨preschool에서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못해서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가벼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 기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프리스쿨 담임 선생님도 소아과 병원의 선생님도 언어 치료speech therapy를 받을 것을 권했다. 알아보니 산타클라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쿠퍼티노시는 산타클라라 카운티 소속)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SELPA(Special Education Local Plan Area)라는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SELPA는 출생시부터 22세 사이의 장애아를 위한 무료 프로그램이다. 산타클라라 SELPA담당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후 교육부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고 절차를 밟아서 그해 9월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언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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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Jun 4th, 2012
To:  Michele OOOO
SELPA Director
Santa Clara County Office of Education

From:  Dong-Hwi Lee
OOOO OO Drive, #OO, San Jose 95129
(408) OOO-OOOO

RE: Speech delay
Dear SELPA director,

I’m writing to you because I have a concern with my 4-year old son’s speech delay.
His pediatrician and preschool teacher recommended IEP program offered by school district, so here I am requesting an assessment for OOO Lee’s language development.
You can reach me at OO@gmail.com or (408) OOO-OOOO (cell).

Thank you,

Dong-Hwi Lee
(Father of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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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치료 선생님은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분이었다. 막내를 직접 테스트하고 장기간 면담을 하면서 아이의 언어 수준이 표준 언어 발달단계로 보면 두 살 정도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짚어주었다.

그리고 교육과정과 부모가 유의할 사항에 대해서 서류를 한장 한장 넘겨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다른 주로 이사를 가더라도 지금 넘기는 서류만 들고가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무료 특수 교육을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다, 이 아이에 대한 평가 결과와 특수교육 여부는 모두 개인정보 보호를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경우에도 해당 학교나 담임교사에게도 아이의 특수한 상태에 대해서는 비밀로 지켜지고, 교육부에서 특수교육 교사를 따로 제공한다고 알려주었다. 또, 필요한 경우 아이와 부모에게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무료 식사도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특수교육 과정 신청절차에서 그 누구도 우리에게 미국 체류 신분이나 우리 가족의 소득 상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중심이었고, 이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몸으로 체험했다.

미국은 모든 게 돈으로 움직인다. 캘리포니아 학생 10명당 1명꼴로 특수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캘리포니아는 20%에 가까운 교육예산이 특수교육에 쓰인다. (우리 아이를 특수교육 과정에 넣을 당시를 기준으로)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지가 있다는 얘기다.

막내는 1년 동안 꾸준히 교육을 받았다. 아이의 특수 교육에는 부모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매주 숙제가 나오면 부모가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해야 한다. 그 주간의 주제에 대해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까지도 편지의 형태로 아이손에 딸려온다.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었다. 나도 부모로서 상당한 정성을 쏟아야 했다.

1년 후 막내는 다시 언어 능력 테스트를 보았고 언어 능력이 또래 아이들 표준을 능가하면서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졸업할 수 있었다. 막내는 1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고 프리스쿨과 유치원kindergarten에서 인기있는 학생이 되었다. 그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졌다. 이제는 너무 말이 많아서 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막내는 책에 빠져서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엄마가 스트레스트를 받는 정도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면서 쿠퍼티노 학군 교육감이 언어능력 성취도가 높은 아이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부모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상을 받은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상장을 한번씩 쳐다보며 미소짓곤 한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 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평균적인 미국 학생의 학업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진다. 그런데도 나는 미국 교육에서 희망을 본다. 장애가 있어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교육정신에서(적어도 취지면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나는 희망을 보았다. 장애가 있건 없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불법체류자건 시민권자이건, 부모가 부자이건 가난하건 모든 아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나는 미국의 특수교육과정을 경험하면서, 공교육의 목적은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공립학교는 잘 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쳐지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평범한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가망이 전혀없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미국이 이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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