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0일 수요일

아이디어는 받지 않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얘기다. 종종 PPT파일과 함께 사업안을 나에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PPT를 열어보지도 않고 돌려보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Public Domain
첫째, 아이디어와 최종 결과물은 백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PPT작성을 포함하여)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 엔지니어들도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전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계를 하지만, 실제로 구현을 하면서 처음 설계와 많이 달라지는 것을 항상 경험한다. 간단한 소프트웨어도 실제로는 복잡하고 구현을 하면서 처음 예상과 다른 변수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원래 생각한대로 완성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프로토타입이나 데모 시스템까지 만들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퇴짜맞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PPT파일만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다.

둘째, 최종 결과물과 사업 성공도 백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가 역사에 길이남을 컴퓨터 시연을 한 적이 있다. 훗날 모든 데모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Demos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시연에서 엥겔바트는 현대적 컴퓨팅의 거의 모든 것, 즉 윈도우 시스템, 하이퍼텍스트, 그래픽스, 화상회의, 마우스, 문서작성기, 실시간 협업 에디터 등을 90분 동안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시연은 그야말로 수십년후의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에 이런 시연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엥겔바트는 사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엥겔바트의 데모는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엥겔바트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실을 맺었다. 예를 들어, 윈도우 시스템과 그래픽스 그리고 마우스는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했다고 하더라도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셋째, 좋은 아이디어라면 누군가는 벌써 시도해봤거나 하고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넓고 아이디어는 많다. 생각보다 내가 그리 독창적인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좋다.

내가 PPT파일을 열어보지도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디어를 보내온 사람은 모르지만 내가 속한 회사나 주변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로 이미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다. 혹시라도 나에게 PPT를 보낸 사람이 자기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사업제안이나 아이디어 검토 또는 기획안 PPT 등을 보내도 받지 않는다. 나를 좋게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아이디어를 보내주는 것은 고마우나 좋은 아이디어라면 직접 구현해보기 바란다.